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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국민연금, 책임 있는 어른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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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왜 국내 가상자산시장이 미국시장 다음으로 클까. 국내 주식시장은 글로벌 비중이 약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다. 왜 비트코인 가격이 우리 메인뉴스 중의 하나일까. 비트코인은 글로벌 주식, 채권시장의 0.4% 비중밖에 되지 않는 마이너 자산인데도 말이다.

하나의 대답은 국내에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하고, 은퇴 이후 복지체계가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업구조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소수의 대기업, 라이센스에 기반을 둔 전문직, 공공부문 정도를 제외하고는 선진국 수준의 소득을 얻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30대에 취업해서 50대 중반에 은퇴해야 한다면,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는커녕 83세의 평균수명까지 존엄한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노후자금을 모아놓기도 쉽지 않다. 선진국에 살면서 선진국 소득을 얻을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다. 무리한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내 가상자산 열풍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미래 불안에 위험자산 투자 열풍
그런 청년을 이용하는 정치 위험
일자리, 자산형성 지원 집중해야
연금구조개혁 및 사각 해소 우선

이런 상황에서 책임 있는 어른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초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청년층에게 세액공제를 늘려주는 것일까, 아니면 청년층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금융투자 교육, 복지체계를 제공해서 안정적인 인생 설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일까. 비트코인은 주식보다 위험한 자산이다. 미국 금리와 미국 기관투자자들의 수급에 의해서 가격이 좌우되고, 변동성도 더 크다. 비트코인에 대해 한국인 개인 투자자가 오랜 기간 우수한 수익률을 거두기 쉽지 않은 이유다. 600만명의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자들을 단순히 표(vote)로만 보았을 때 정치권에서 어른답지 않은 공약이 나올 수 있다.

책임 있는 어른들의 역할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는 국민연금 개혁이다. 노후를 책임져줄 연금과 복지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면 청년층이 위험한 투자를 무리해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결과가 화제다. 더 내고 더 받기(소득보장론)와 더 내고 그대로 받기(재정안정론)의 투표에서 시민대표단은 소득보장론을 56%, 재정안정론을 42% 선택했다.

그런데 선택안에 주어가 빠져있다. 주어를 더하면 ‘현재 경제활동 세대’가 더 내고, ‘은퇴 세대’가 더 받는 안이다. 그나마 현재 경제활동 세대는 국민연금이 소진되기 전에 은퇴 세대가 될 테니 다행이다. 어린이, 영유아,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는 앞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소득의 최대 35%를 납부해야한다. 사실 투표에 부쳐졌던 재정안정론도 미래 세대에게 불리하기는 마찬가지다. 향후 70년간 누적 미적립 부채가 소득보장론보다 2672조원 적어지는 차이, 덜 불리하고 더 불리하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는 애초에 1988년 국민연금이 시작될 때 3%의 부담으로 70%의 소득대체율을 보장받는, 후세대가 미래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연대’에 기반을 두어 설계되었고, 2007년 이후 17년간 아무런 개혁이 없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다음 세 가지 과제를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연금 모수 조정이 아니라 구조개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모수 조정(parameter adjustment)이란 보험료율 9%에서 13%로의 인상 같은 숫자 조정을 의미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공적연금 재구조화 방안연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숫자를 바꾸어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에 KDI는 현재 방식의 구연금과 신연금으로 나누는 구조개혁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연금개혁이 1년 늦어질수록 재정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KDI의 추계에 따르면 연금개혁이 2024년보다 5년 늦은 2029년에 단행될 경우 재정 부족분은 609조원이 아니라 869조원으로 증가한다.

둘째,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대한 복지 확충도 고려해야 한다. 2020년 기준 사각지대 규모는 약 1263만명,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 10명 중 4명으로 추정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일용근로자와 같은 일자리 취약계층은 국민연금 제도권 밖에 있다. 일자리 격차에서 오는 국민연금 수급권 획득의 차이가 다시 노후양극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셋째, 청년층의 자산형성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과 금융투자 교육이 필요하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순자산은 4억9000만원이지만 39세 이하 순자산은 2억3000만원이다. 이미 높아져 버린 집값과 성장률 평균 2% 이하의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청년세대에게 자산형성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해주어 무리한 초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로 원금을 날리지 않고 복리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

모든 과제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성장률 평균 5% 이상 시대에서 자산형성에 성공하고, 정치사회적 권력을 가진 어른들이 책임지지 못한다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