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 자세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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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도대체 왜 만났을까? 얼마 전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간 이른바 영수회담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지난 2년간 만남을 회피했던 윤 대통령이 자리를 마련한 건 선거 참패를 겪고 난 후 불통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대표 역시 ‘피의자’가 아니라 야당 대표로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인정받고, 또한 총선에서 승리한 장수로서 힘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회담에서 내가 궁금해하며 주목했던 건 이재명 대표였다. 이 대표는 오래전부터 영수회담을 갖자고 제안해 왔고, 그 자리에서도 “여기 오는 데 700일이나  걸렸다”는 말까지 했다. 그렇게 기다린 만큼 영수회담에서는 그동안 이 대표가 보여줬던 것과는 뭔가 결이 다른, 말 그대로 ‘영수(領袖)’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회의에서 이 대표가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영수회담에서 미리 준비해 간 A4 10장 분량의 원고를 읽었는데, 형식도 내용도 영수회담의 수준에는 맞지 않았다. 대통령을 만나자고 해 놓고 거기서 자기의 지지층을 향해 연설한 모양새였다.

미리 준비한 원고 읽었던 이 대표
대통령 앞에서 지지층 향해 연설
통큰 자세 기대했으나 기대 미흡
독주·불통의 경고, 야당에도 해당

영수회담을 두고 권위주의 시대의 소산이니 시대착오적이니 하는 말도 있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최고 지도자는 주변의 의견이 분분한 난제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그런 점에서 ‘영수’가 만나는 것은 각 당이나 진영 내부의 반대나 단기적 이해관계를 넘어 큰 틀에서 막힌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이들이 실무선에서 합의가 어려운 문제를 두 사람이 만나 해결해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그동안 해 왔던 주장을 반복하거나 지지층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한다면 대변인 성명이면 될 일이지 영수가 굳이 만나 할 행동은 아니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회담을 보면서 이 대표가 작게 느껴졌다. 총선 승리가 사법 리스크를 없애 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승리와 함께 이 대표는 차기 대권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거기에 맞는 격을 기대했는데 크게 미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선거에서 크게 승리했지만 사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대표로서는 우려할 만한 점도 적지 않다. 특히 당의 전통적 기반인 호남에서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에 밀렸다. 거대 정당이 유리한 선거제도의 특성으로 인해 지역구에서는 민주당이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조국혁신당에 이어 2위에 그쳤다. 민주당은 광주에서 36.3% 대 47.7%로, 전남에서는 39.4% 대 44.0%로, 그리고 전북에서는 37.6% 대 45.5%로 조국혁신당에 뒤졌다.

더욱이 총선 이후에 실시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호남 지역에서 민주당 선호도는 51%였지만, 이 대표 선호도는 37%에 그쳤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 직후의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에 대한 선호는 민주당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선거 민심이 ‘윤석열이 싫다’고 생각한 건 맞지만 그게 꼭 이재명 대표가 좋다는 뜻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민은 권력의 독주나 일방적인 국정 운영을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총선이야말로 대통령이 독주하고 불통하는 데 대한 심판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서는 국회를 장악하게 된 야당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민주당이 거대 의석의 힘만 믿고 독주하면, 이번 선거에서 윤 대통령에게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오만함을 국민이 느끼게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3년이나 남았지만 보궐선거는 당장 내년이라도 실시될 가능성이 있고, 그 결과는 작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처럼 정치적 파문을 불러올 것이다. 이번에는 윤 대통령이 심판의 대상이었지만 그때는 민주당이나 이 대표가 될 수도 있다. 권력이 주어졌을 때의 신중함과 사려 깊은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이번 총선은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권력자가 깨닫게 해 준 기회였지만, 정치제도적으로 보면 대통령과 의회라는 두 개의 권력이 충돌할 수 있는 대통령제의 가장 나쁜 상황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린즈(Linz)는 대통령과 의회 간 대립과 갈등을 대통령제의 위험으로 간주하면서 이것이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진단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런 제도상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여야 최고 지도자 간의 타협과 합의이다. 영수회담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몹시 서툴고 어색하게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또 만나야 하고, 만난다면 영수회담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격조와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또 만나면 이번보다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