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고립 北-이란의 '쿵짝'…"자동차 분야도 협력" 속셈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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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시찰단 단장으로 지난달 23일부터 열흘간 이란을 방문한 윤정호 대외경제상이 제6차 이란 수출박람회에 꾸려진 이란 자동차 제조사인 사이파의 부스를 방문해 차량을 시승하는 모습. 사진 사이파(SAIPA)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북한 경제시찰단 단장으로 지난달 23일부터 열흘간 이란을 방문한 윤정호 대외경제상이 제6차 이란 수출박람회에 꾸려진 이란 자동차 제조사인 사이파의 부스를 방문해 차량을 시승하는 모습. 사진 사이파(SAIPA)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과 이란이 무기거래 외에 다른 분야까지 협력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란에 파견한 경제사절단은 현지 기업과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 분야에서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6일(현지시간) 이란의 자동차 제조사인 '사이파(SAIPA)'가 공식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윤정호 북한 대외경제상이 자신들의 차량을 시승하는 사진을 공개했다고 전했다. 사이파에 따르면 윤 경제상은 지난달 27일에 개막한 제6차 이란 수출박람회에서 사이파 부스를 방문해 "사이파는 승용차와 상용차 생산에서 좋은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사이파 자동차 그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북한도 기계 제작과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 적절한 수준에 있고, 양국의 우호적인 정치적 관계를 고려하면 자동차 산업에서 좋은 협력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7년 10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대북 유류 공급을 대폭 줄이는 내용 등을 포함한 ‘대북제재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모습. 신화사,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7년 10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대북 유류 공급을 대폭 줄이는 내용 등을 포함한 ‘대북제재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모습. 신화사, 연합뉴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이란 차량을 수입하거나 이란 기업이 북한에 자동차 생산 기술을 전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이파는 이란에서 두 번째 규모의 국영 자동차 제조사로 중국 자동차는 물론 한국의 구형 자동차 모델을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다.

양국의 자동차 분야 협력이 성사될 경우 북한과의 모든 합작투자·협력사업을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제2375호) 위반이지만, 어차피 제재를 무시하고 있는 국가들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각에선 자동차의 개발·제작 공정에 들어가는 각종 반도체 등이 대북 반입이 금지된 이중용도 품목인 점을 노리면서 정상적인 경제협력으로 위장하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유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규모나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양국 간 경제 협력의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서방 중심의 국제사회가 부과한 제재의 불합리성·무용론을 부각하기 위한 정치·외교적인 도구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란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서 공개한 신형 자폭 드론인 아라쉬 드론의 모습. AFP, 연합뉴스

이란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서 공개한 신형 자폭 드론인 아라쉬 드론의 모습. AFP, 연합뉴스

앞서 북한은 윤 경제상을 단장으로 하는 경제사절단을 지난달 23일부터 열흘간 이란에 파견했다. 표면적으로는 제6차 이란 수출박람회 참석을 이유로 들었지만, 외교가에선 양국이 군사 분야 협력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특히 북한이 우위를 가진 '핵 기술'과 이란이 우위를 보이는 '드론 기술'이 잠재적인 주고받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와 함께다.

이와 관련,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 지난달 29일 북한 대표단의 이란 방문이 핵 기술을 비롯한 양국 간 군사협력 모색 차원일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편향되고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일축했다. 또 "제6회 수출박람회에 참석하고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양국 무역 발전과 관련한 회담을 했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북한과의 모든 합작·협력 사업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금지된 만큼 어떤 국가든지 대북제재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한편 미국의소리(VOA)는 이날 북한이 개성공단 북측 출입구 관련 시설도 철거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남측 출입구 관련 시설을 철거한 데 이은 조치다.

VOA에 따르면 미국 민간 위성업체인 '플래닛 랩스'가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개성공단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개성 방면 도로에 설치됐던 파란색 지붕과 인근 부속 건물이 모두 사라진 장면이 포착됐다. 철거 작업은 지난 3월 13일부터 지난달 9일까지 진행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해당 자리에 120m의 직사각형 형태의 구조물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는 게 VOA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 북측 출입구 시설은 북한 측 시설이기 때문에 철거 여부에 대해 정부에서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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