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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크림 공지' 안 하면 학대?…교사 98% "초 1∙2 체육 부활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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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부산의 한 초등학교 실내 체육관에서 줄넘기를 하는 학생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부산의 한 초등학교 실내 체육관에서 줄넘기를 하는 학생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 2학년 학생 22명을 대상으로 ‘즐거운 생활’ 수업이 한창이다. 대형 보자기 가장자리를 움켜쥔 학생들은 보자기 가운데에 놓인 배구공이 튀어 오를 때마다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겼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이른바 ‘낙하산 놀이’다.

“놀이 수준의 신체 활동, 비만·과체중 불러”

앞으로는 학교 수업에서 이런 ‘놀이’보다는 ‘운동’ 중심으로 신체 활동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1989년 이후 35년 만에 초등학교 1·2학년에 ‘체육’ 교과가 부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음악·미술·체육을 통합해 가르치는 즐거운 생활에서 체육을 떼어내 별도 과목을 신설하는 등 국가교육과정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교육당국이 체육 교과를 분리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신체 활동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교육부에 따르면 초·중·고 비만군(비만+과체중)은 2017년 23.9%에서 지난해 29.6%로 5.7%포인트 높아졌다. 초등생은 같은 기간 7.8%포인트(22.5%→30.3%)로 더 올랐다.

현재 즐거운 생활 과목의 경우 학교나 교사에 따라 신체 활동의 정도가 제각각이어서 초등학생들의 운동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실에서 율동 영상을 따라 하면서 체육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교사들 “소통 없는 졸속…민원은 교사 몫인가”

대부분의 교사는 체육 교과 분리에 반발하고 있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이 최근 초등교사 7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8%가 체육 교과 분리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 충분한 논의와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85.6%)가 가장 많았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수업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교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최근 학교안전공제중앙회가 시·도교육청에 배포한 ‘2024 학교배상책임공제 사고 사례집’과 ‘학교안전사고 보상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발생한 학교 내외의 학생 안전사고 중 체육수업 시간에 발생한 사고가 38.1%로 가장 많았다. 정광순 한국교원대 교수는 “초등 저학년은 안전한 놀이 중심 활동으로 몸을 많이 움직이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체육 수업이 민원의 불씨가 되는 사례도 많다. 서울의 한 3학년 담임 교사는 “아이들이 싸우면 말리느라 바쁘고, 다치기라도 하면 여기저기 연락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더 어린 1·2학년에서 체육 관련 민원이 늘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학교에서 야외 활동이 있는데 ‘선크림 공지’를 안 해줬다”며 “아동 학대로 신고하면 처벌할 수 있느냐”라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체육 필요성 공감해도…“시설·인력이 우선”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교육과정 개정보다 체육 활동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을 우선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교순 초등교사노조 정책국장은 “학교에서 신체 활동 수업을 하고 싶어도 체육시설 등 물리적인 여건이 마련이 되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선 체육 수업을 보조하는 초등 스포츠강사를 고용하고 있지만, 교원노조는 교사자격증이 없는 스포츠강사 대신 체육전담 교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부모 “학교 체육 부족하면 사교육 할 수밖에”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교사와 달리 학부모들은 체육 교과 분리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2학년 쌍둥이 아들을 둔 학부모 김모(48)씨는 “방과 후 축구 교실 정원이 20명뿐이라 쌍둥이 중 한 명은 떨어졌다”며 “학교 체육이 부족하면 사교육으로 가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6세인 아들이 축구 교실에 다니는데, 발달 단계가 더 높은 초등생이 놀이 위주 수업을 할 필요가 있냐”라고 반문했다.

체육 교과를 분리하기까진 2~3년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연구와 교과서 개발 등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김새봄 교육부 인성체육예술교육과장은 “국교위에서 논의의 첫발을 뗀 셈”이라며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보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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