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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전 증후군·공황장애…직장생활 힘든 각자의 사연 이해해야"

중앙일보

입력

1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기자회견에서 미야케 쇼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기자회견에서 미야케 쇼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생리전 증후군(PMS)으로 생리 전만 되면 분노를 억제할 수 없는 젊은 여사원, 공황장애로 발작증세가 나타날까 봐 노심초사하는 남사원. 인생 최악의 시기, 한 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게 되면서 자신의 증세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지난 1일 제25회 전주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 일본 영화 ‘새벽의 모든’이다.
영어 제목은 ‘All the Long Nights’(모든 긴 밤들). 사회생활에 부적응한 각 인물의 속 깊은 이야기를, 어둠 덕분에 별빛을 볼 수 있는 밤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에 빗댔다. 이들을 지켜보는 나이 지긋한 동료들의 담담한 배려 또한 따뜻하게 다가온다. 직원이 열명도 안 되는 과학기기 제조사 ‘구리타 과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전 사원이 플라네타리움(천체투영관)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고달픈 삶에 숨어있던 작은 빛을 발견하는 주인공들의 여정과 겹쳐진다.

제25회 전주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미야케 쇼 감독

“직장생활 어려운 일본인 많아졌다” 

영화는 일본 작가 세오 마이코의 소설을 토대로 했다. 청각장애 여성 복서의 성장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일본 영화계 신성으로 주목받은 미야케 쇼(40) 감독이 전작에 이어 16㎜ 필름으로 촬영했다. 전주 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는 “크고 작은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모아 평화로운 우주를 만드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되는 아름다운 영화”라고 개막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개막 전 내한 기자회견에서 미야케 감독은 “PMS나 공황장애가 아니라도 모종의 이유로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일본 사회에 많다. 이들의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길 바랐다”고 연출 취지를 밝혔다. 그를 2일 전주 완산구의 영화제 프레스센터에서 또 다시 만났다. 

아침이 새로운 시작? 공황장애는 더 절망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개막작에 선정된 일본 감독 미야케 쇼의 신작 '새벽의 모든'. 사진 JIFF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개막작에 선정된 일본 감독 미야케 쇼의 신작 '새벽의 모든'. 사진 JIFF

-‘새벽의 모든’이란 제목이 독특하다.  

“인생이 힘든 것을 보통 밤, 암흑으로 표현한다. 아침은 새로운 시작, 희망을 의미한다. 그런데 공황장애로 수면장애를 앓는 이들에겐 잠 못 자고 밝아오는 아침이 절망일 수 있다. 새벽을 맞기까지 그 모든 것, 풍부한 의미를 발견해주시길 바랐다.”

-원작 소설의 무엇에 끌렸나.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 야마조에(마쓰무라 호쿠토) 두 주인공 캐릭터에 끌렸다.”

-두 사람은 회사생활에서 고통을 겪는 젊은 세대다. 한국에선 조직문화 부적응을 젊은 세대 특성과 연결짓기도 하는데.  

“일본도 비슷하다. 젊은 세대를 특정 이름으로 통칭하는 사람은 대개 윗세대다. 일단 이름을 붙이면 잘 몰라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힘은 그런 선입견을 부수는 데 있다. 이 영화도 특정 세대가 아니라, 두 주인공 개개인에게 집중했다.”

생리전증후군 책·환자마다 증세 천차만별

영화 '새벽의 모든'에서 주인공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 사진), 야마조에(마쓰무라 호쿠토)는 각각 생리전증후군과 공황장애로 고통받는다. 후지사와는 생리기간만 다가오면 온화하던 성격이 시비조로 바뀐다. 사소한 일로 다툰 야마조에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그와 가까워지게 된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새벽의 모든'에서 주인공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 사진), 야마조에(마쓰무라 호쿠토)는 각각 생리전증후군과 공황장애로 고통받는다. 후지사와는 생리기간만 다가오면 온화하던 성격이 시비조로 바뀐다. 사소한 일로 다툰 야마조에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그와 가까워지게 된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공황장애‧PMS 조사는 어떻게 했나.

“영화를 준비할 때 관련 책을 많이 읽는다. 그런데 PMS는 책마다 얘기가 다르더라. 환자 선택에 따라 정신과 또는 산부인과를 가는데, 병명이 다르다 보니 굉장히 다른 취급을 받게 된다. 결국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란 걸 느꼈다. 또 인간은 호르몬 변화 등으로 원치 않아도 기분이 안 좋고 몸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배우에게 공황장애 발작 연습을 사람이 많은 데서만 하라고 했다고.

“야마조에 역의 마쓰무라 호쿠토는 캐릭터를 열심히 연구하는 타입이다. 이런 열정에 공황장애 요소가 합쳐져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까 두려웠다. 나도 현장에서 ‘브레이크’ 역할에 신경 썼다. 두 배우 모두 특별한 연기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 촬영이 끝날 무렵 얘기해보니 ‘크게 보이는 식의 연기가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통했더라. 실제 공황장애 환자도 가능한 증세를 숨기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배려깊은 직장상사, 영화 안 나오는 삶도 모두 상상" 

영화 '새벽의 모든'에서 야마조에(마쓰무라 호쿠토, 사진)는 공황장애로 인해 지하철도 탈 수 없다. 약을 먹지 않으면 발작증세가 나타날까 봐 노심초사한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새벽의 모든'에서 야마조에(마쓰무라 호쿠토, 사진)는 공황장애로 인해 지하철도 탈 수 없다. 약을 먹지 않으면 발작증세가 나타날까 봐 노심초사한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원작과 가장 많이 달라진 건 구리타 과학 회사 설정이다. 미야케 감독은 "노땅 같은 상사들이 알고 보면 수의학 전공자라거나, 세계여행 전문가, 지금도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시험을 보는 중이다. 각 캐릭터 프로필을 각본가와 만들어 배우들과 공유했다"고 했다. "TV 드라마 때 시도해보니 시간이 부족한 촬영현장에서 캐릭터가 ‘이런 사람’이란 걸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각 캐릭터들에 ‘삶’을 심어둔 덕에, 두 주인공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절묘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사소하지만 세심한 눈짓과 태도가 매 장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필름의 독특한 질감은 주연 배우 주변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담아낸다. 미야케 감독은 “16㎜ 필름은 빛과 어둠의 표현이 디지털과 매우 다르다. 필름은 계절감, 습도, 공기, 공간의 분위기가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천체투영관 장면은 필름이 아니었다면 그만큼 담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새벽의 모든'은 16mm 필름으로 촬영했다. 디지털 영화가 일반화한 요즘, 필름 영화 기술을 후대에 전하고 싶다는 미야케 쇼 감독의 의지도 작용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새벽의 모든'은 16mm 필름으로 촬영했다. 디지털 영화가 일반화한 요즘, 필름 영화 기술을 후대에 전하고 싶다는 미야케 쇼 감독의 의지도 작용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뚜렷한 악인은 없지만 고된 우리 일상에 스스로 렌즈를 들이대, 잘 보이지 않던 주위의 다정함을 발견하게 만드는 영화다. 미야케 감독은 “천체투영관 안에 별을 비추는 투영기가 영화관의 아날로그 영사기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이 렌즈를 통해 조그만 걸 볼 수도 있고, 멀리 있는 별도 볼 수 있다”면서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은 영화관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기에 반드시 영화관에 가서 봐 달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가능한 분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느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새벽의 모든’은 올 하반기 극장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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