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자연과 멀어지는 시간의 개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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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지금보다 시력이 훨씬 좋았던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의 고장 난 시계를 분해한 뒤 재조립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재조립한 시계가 다시 작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시계 수리 작업 자체보다 용수철, 숫자판, 톱니바퀴 같은 부품들과 시계의 작동 원리 간의 관계를 파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이 좋았다. 더 큰 뒤에는 작은 시계 내부의 작동 방식이 천체 순환 운동과 매우 유사하며, 이를 기반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시간 측정 방식을 고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공전하는 시간으로 약 365일이다. 지구의 미미한 궤도 이탈과 자전 속도의 변형으로 인해 매년 발생하는 시간적 오차는 ‘윤년’으로 보충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천체 순환 주기를 기반으로 ‘율리우스력’을 제정한 기원전 50년경에는 천체의 운동을 인간의 영향력을 초월하여 영원히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천체 운동서 시작된 시간 측정
음악 같은 문화 관념에도 영향
빙하 유실로 지구 공전 늦어져
급기야 원자시계로 시차 보완

2024년으로 돌아와 보자. 보고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한 빙하 유실이 지구의 자전 속도에 영향을 미쳐,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라 시간도 지연된다고 한다. 이 지연 때문에 매년 윤초(閏秒)가 점점 더 길어져 정밀한 원자시간(세슘 원자시계로 측정하며 1억5800만 년마다 1초의 오차만 발생)과 자연시간 간의 시차를 보충해야 한다. 첨단기술 기업부터 산업형 농업 종사자, 초단타 매매자, 우주비행사, 군 지휘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초정밀 표준시각을 제공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의존하는 오늘날에는 윤초를 변수에 넣는 일에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음악과 시간 측정법의 관계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카이사르의 율리우스력은 기존의 변덕스러운 역법들을 대체했다. 그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역법은 계절에 따른 태양 주기를 불균등한 일광 시간이 적용된 달력에 옮겨 놓은 ‘불균형적 시간 측정법’이다. 이는 당대인들, 특히 일출과 일몰 시간에 활동하는 정규 의례 참석자들과 음악가들에게 효율적인 시간 측정법이었다. 이 측정법을 알아보면서 나는 이것이 문화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옥타브를 나누는 음계와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양 음악에서 사용하는 ‘평균율’은 한 옥타브를 12음으로 균등 분할하여 서양음악의 두 가지 주요 특성인 조바꿈과 화음을 지지하는 방식이다. 평균율의 기반이 되는 발상은 동아시아에서 유래했는데, 1584년 중국 명나라 왕자이자 수학자·물리학자·안무가·음악이론가였던 주재육(朱載堉)이 쓴 ‘율학신설(律學新說)’에 처음 등장한다. 명나라 당대에는 불균등한 음계를 선호했기에 평균율은 사용되지 않았다. 예컨대 금(琴) 연주는 줄을 13개의 점으로 분할해 단선 배음렬에서 비롯되는 음조를 기반으로 한다. ‘순정률’이라고 하는 이 음계에서는 3:2나 4:3 같은 음정 비율에 따라 음간격을 설정한다.

주재육으로서는 5세기 후 동아시아인들이 K팝부터 클래식 음악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든 ‘평균율’로 이루어진 음악을 들으며 자라게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통 음악은 불균등한 음계를 기반으로 형성돼 이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음정이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평균율이나 원자시간의 등장은 모두 인간의 시간 측정이 아날로그적/자연적 사고방식에서 디지털/컴퓨터로 전환됐다는 점을 나타낸다.

2035년 윤초 없어져

4월 초에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달에서 쓰일 시간대를 만들 계획이라는 토막 뉴스를 접했다. 지난 달 2일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에서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연방정부에서 우선 달 표면과 시스루나 공간에서 수행하는 임무에 집중하여 다른 천체에 대한 임무를 지원하기에 충분한 추적성을 갖춘 달 표준시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스루나 공간’(Cislunar space)이란 달의 궤도 내 영역을 의미하고, ‘추적성’ (traceability)이란 지구 시간대를 비롯한 다른 천체들과 동기화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나사는 달 표준시의 명칭으로 ‘협정 달시’(Coordinated Lunar Time, CLT)라는 이름도 이미 정해 두었다.

2035년에는 윤초가 폐지된다. 이후에는 오로지 원자시계로만 시간이 측정된다. 낮과 밤의 주기는 인간의 신체 리듬에 영향을 미쳤고,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 길이에 처음 주목한 시절부터 문화적 시간 관념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원자시계는 낮밤의 주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천체에 기반한 시간 측정법은 인간을 지탱하는 거대한 우주와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나로서는 지구와 태양, 달 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시간 계산법을 포기함으로써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