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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공약을 잊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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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한바탕 총선이 끝났다. 이달 30일이면 22대 국회가 문을 연다. 대통령과 정부, 여·야 정당은 물론 국회의원 당선자까지 선거 기간 내뱉은 말(정책과 공약)을 주워 담을 결산의 시간이다. 그런데, 진짜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들어 3월 28일까지 22차례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다주택자 중과세 철폐(1월 10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1월 17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본격화와 철도·도로 지하화 추진(1월 25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속도(2월 13일), 전남 영암~광주 ‘한국형 아우토반’ 초고속도로 건설(3월 14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3월 19일) 등이다. 하나같이 막대한 예산이 들거나, 세수(국세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지난달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당선인들이 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당선인들이 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뉴스1]

선거에서 압승한 만큼 야당발(發) 공약도 힘을 받을 전망이다.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 18세 미만 자녀 1인당 아동수당 월 20만원 지급, 경로당 무상급식…. 정점은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내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에게는 1인당 10만원씩 더 쥐여주겠다고 했다. 소요 예산은 13조원. 민주당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을 추경 편성요건으로 규정한 국가재정법 89조가 무색하다.

당선증을 받아든 지역구 후보자의 공약은 한술 더 뜬다. 청와대 청주 이전(이연희·청주 흥덕),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 신창 연결(복기왕·충남 아산갑), 충주 허브 공항 유치(이종배·충북 충주), 지상철 수성 남부선 추진(이인선·대구 수성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필요 재원 ▶재원조달 방안 ▶이행 시기 ▶이행 방법 ▶예비타당성 조사 가능성 등을 따졌을 때 실현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한 공약이다. 이런 공약(空約)이라면, 차라리 지키지 않기를 바랄 정도다.

한숨만 쉬기에 금배지의 어깨가 무겁다.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행사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며, 정부 예산을 심의·의결한다. 올해 정부 예산(656조6000억원) 기준 국회의원이 임기(4년) 동안 다루는 예산이 2626조4000억원이다. 허술한 공약을 내놓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면 곳곳에서 예산이 줄줄 샐까 우려된다. 당선자는 정책과 예산을 다룰 때마다 실현 가능한지, 세금 낭비는 아닌지 따지는 상식을 되새겼으면 한다. 더는 한 표가 다급해 ‘묻지 마 공약’을 쏟아내던 후보자 신분이 아니기에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