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과학기술계 고사시키는 ‘의사들의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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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홍성출 전북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

홍성출 전북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

경제가 발전하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같이 증가한다. 그래서 지난 25년 동안 의사 수가 한국보다 많은 나라조차 의사 수를 꾸준히 늘려왔다. 하지만 한국은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당시 의대 정원을 줄인 상태로 지금까지 오고 있다.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

게다가 농어촌 특별전형, 중도 이탈자 충원 등을 폐지해 실질적으로 의대 정원은 더 축소됐다. 의대 입학 정원 축소로 인해 ‘2023 보건 통계’에 따르면 국민 1000명당 의사 수는 기존에 알려진 2.6명보다 훨씬 적은 2.23명으로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해도 가장 적을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까지 포함해도 최저 수준이다.

세계는 의사 증원, 한국은 역행
한국 전공의 소득, 세계 최상위
고임금으로 과학 인재도 쓸어가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의사의 희소성 때문에 임상 현장에서 의사들의 임금(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한국 의사의 소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의대 정원을 확대하지 않으면 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전공의가 주 80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과 미국을 한번 비교해보자. 한국을 제외하고 의사 임금이 가장 높은 미국의 경우 전공의 평균 연봉이 8500만원(6만3400달러)이다. 한국 전공의의 평균 연봉인 7280만원(필수 과는 정부보조금 포함하면 8480만원)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절반에 못 미치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 전공의의 실질 연봉은 미국의 2배가량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의사를 보조하는 의료전문인, 즉 PA(Physician Assistant)의 평균 연봉은 4500만원이다. 하지만 미국의 PA 평균 연봉은 1억6400만원(12만6010달러)이나 된다. 이처럼 한국의 전공의와 PA 연봉을 미국과 비교해보면 전공의를 포함한 한국 의사들이 얼마나 고소득자인지 자명해진다.

전공의는 직업인이라기보다는 수련생 신분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전공의는 과학기술 분야 수련생 신분인 포스트닥 연구원과 비슷한 위치다. 미국의 경우 포스트닥 연구원과 전공의의 평균 연봉은 8500만원 내외로 비슷한 수준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한국은 박사 학위 취득 후 포스트닥 연구원으로 취업했을 때 평균 35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포스트닥 연구원의 연봉은 전공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은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라서 배출되는 의사는 박사학위에 준하는 학위를 받은 인력이다. 하지만 한국의 의사는 학사학위에 준하는 학위를 받은 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고려하면 한국 전공의의 연봉 수준은 비교할 나라가 없을 정도다. ‘의사 천국’이나 다름없다.

박사학위를 받고도 연봉 3500만원 수준의 수련생 신분인 과학기술계 분야의 포스트닥 연구원은 안정적 일자리조차 찾기 힘들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처참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국가 예산을 몽땅 과학기술계에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박사 후 수련생인 포스트닥 연구원과 학사 후 수련생인 전공의의 처우를 비교하면 적성을 따질 것도 없이 이공계 인력은 10수를 하더라도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개인에겐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실제로 10수를 해서라도 의대에 가려는 기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이공계 인재가 목숨을 걸듯이 의대에 진학하려고 발버둥 치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학생이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삼수를 넘어 ‘N수’에 매달리다 보니 과학기술계는 과학을 이해하는 인력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학문 후속세대 인력이 고갈되면서 과학기술계 전체가 고사하고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정부가 국가 연구비를 아무리 많이 투자해도 과학기술 분야 경쟁력은 갈수록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의대에서조차 의과학을 연구할 최소한의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전 세계 의대 순위에서 한국 순위가 점차 내려갈 지경이다.

반도체·원전·자동차·철강 등 지금 대한민국 경쟁력의 원천은 의대 블랙홀이 없던 1980~90년대에 과학기술계로 진출했던 인재들이 일군 성과다. 이 세대를 이어갈 과학기술 인재가 없다면 국가의 장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부는 의대 개혁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성출 전북대 의과대학·미생물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