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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의 경제 기적 끝났나” 묻는 FT의 쓴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2021년 11월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21 중앙포럼에서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21년 11월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21 중앙포럼에서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좌파 국회와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갈린 리더십”

재정 악화, 고물가 부를 13조 현금 살포는 자제를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어제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나’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에서 우리 경제의 약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값싼 에너지·노동력에 의존한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은 한계에 봉착했고, 기반기술 부족으로 한국의 글로벌 정상급 기술이 급감했으며, 대기업은 대부분 3세 체제로 바뀌면서 오너 경영인들의 도전의식이 부족해졌다는 점을 꼬집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위기,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지지부진한 개혁 등도 거론했다.

활력을 잃은 한국 경제의 민낯이 외신에 대서특필되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FT의 이런 지적은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이미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이 숱하게 언급해 온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다. FT는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가라앉는 느낌(Sinking feeling)’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국 경제 위기론을 집중 조명해 정부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에 비해 이번 보도는 정부가 해명하거나 반박할 내용이 별로 없다.

FT의 가장 아픈 지적은 총선 이후 한국의 리더십 분열을 거론한 대목이다. FT는 “정치적 리더십이 좌파가 장악한 입법부와, 인기 없는 보수 대통령의 행정부로 쪼개지면서 차기 대선이 있는 2027년까지 3년 이상 정국이 교착될 전망”이라고 썼다. 정치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저출산이나 에너지 부문의 구조개혁, 자본시장 선진화 같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가까운 장래에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FT는 분석했다.

실제로 FT의 우려대로 우리 사회가 흘러가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동을 앞두고 전 국민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에는 13조원의 재정이 필요하고 불가피하게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 경제 위기나 대규모 재해가 터진 것도 아닌데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법적 요건에 어긋난다. 3%대로 오른 물가 불안을 더 키우고 재정 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올해도 기업의 실적 악화 탓에 법인세 등 세수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법인세를 가장 많이 냈던 삼성전자가 지난해 실적 악화로 올해는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내게 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런 판국에 전 국민 현금 살포를 주장하는 것은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FT 기사에서 “한국인의 DNA에 역동성이 내재해 있다. 경제적 역동성을 다시 펼치기 위해 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지만,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정책 당국자가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를 낙관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는 최고위 경제 공직자의 희망 섞인 분석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