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관극'은 잊어라…떠들며 보는 코미디극 '스카팽'의 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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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카팽'을 보러 오신 관객 여러분 환영합니다. 공연 중 언제든 자유롭게 입장과 퇴장이 가능합니다."

연극 '스카팽' 공연 사진.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두 쌍의 연인이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하인 스카팽의 이야기다. 정 중앙이 '스카팽' 역의 이중현 배우. 사진 국립극단

연극 '스카팽' 공연 사진.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두 쌍의 연인이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하인 스카팽의 이야기다. 정 중앙이 '스카팽' 역의 이중현 배우. 사진 국립극단

지난 12일 연극 '스카팽'(연출 임도완)을 보기 위해 찾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생소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공연 중 언제든 퇴장해도 괜찮으며, 원활한 입·퇴장을 위해 객석 조명을 완전히 소등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공연 중 퇴장하면 재입장이 어렵다",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등받이에 등을 붙인 자세로 관람하라" 등 통상적인 공연장 안내 멘트와는 달랐다.

이날 개막해 다음 달 6일까지 이어지는 공연은 이처럼 전 회차가 '열린 객석'으로 진행된다. 공연 중 옆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자리에서 뒤척여도 상관없다. 이날은 수어 통역사가 무대 위에 등장하는 '접근성 회차'가 진행 중이었다.

2019년 초연, 2020년과 2022년 재연·삼연을 거쳐 국립극단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희극 '스카팽'이 통념을 깨는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극은 재벌가 회장들이 자녀의 정략결혼을 결정하고 여행을 떠난 사이 그 자녀들이 뜻밖의 인물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압적인 부모에 맞서는 두 쌍의 연인은 영리한 하인 스카팽의 도움을 받아 난관을 헤쳐나간다.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1622~1673)의 희곡 '스카팽의 간계'가 원작이다. 초연 당시 월간 '한국연극' 선정 올해의 베스트 공연 일곱 작품 중 하나로 뽑혔고, 제56회 동아연극상 무대예술상 등을 받았다.

연극 '스카팽' 공연 사진. 캐릭터의 특징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분장과 의상은 유럽의 코미디극 양식인 '코미디아 델라르테'의 특징 중 하나다. 사진 국립극단

연극 '스카팽' 공연 사진. 캐릭터의 특징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분장과 의상은 유럽의 코미디극 양식인 '코미디아 델라르테'의 특징 중 하나다. 사진 국립극단

지난 시즌 ‘땅콩 회항’ 사건과 학제 개편, 논문 표절 등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을 연극에 재치 있게 녹인 임도완 연출이 이번에도 시사 풍자를 선보인다. 대통령 경호원이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연구원의 입을 틀어막은 ‘입틀막’ 사건, 축구 국가대표팀의 내분이 드러난 ‘탁구 사건’ 등을 패러디한 장면이 적재적소에서 관객을 포복절도케 한다.

연극 '스카팽' 접근성 회차 공연 모습. 양쪽 끝에 있는 수어 통역사들이 배우와 합을 맞춰 연기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단

연극 '스카팽' 접근성 회차 공연 모습. 양쪽 끝에 있는 수어 통역사들이 배우와 합을 맞춰 연기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단

배우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수어 통역을 선보이는 통역사들의 연기는 극의 백미다.이들은 단순한 통역사가 아니라 배우의 분신처럼 등장하는데,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 연기 만으로도 존재감을 뽐낸다. 배우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장면에서는 통역사도 들것에 누워 앓는 연기를 한다. 하인 실베스트르의 대사를 전담한 권재은 수어 통역사 등 6명 중 4명이 현역 연극배우이거나 배우 출신이다.

연극 '스카팽'을 공연 중인 배우와 수어통역사들. 권재은 수어통역사(왼쪽에서 첫 번째)는 현직 연극 배우이기도 하다. 사진 국립극단

연극 '스카팽'을 공연 중인 배우와 수어통역사들. 권재은 수어통역사(왼쪽에서 첫 번째)는 현직 연극 배우이기도 하다. 사진 국립극단

객석에 켜진 은은한 조명은 관객의 자유로운 입·퇴장을 도울 뿐 아니라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했다. 배우들은 관객의 반응을 보며 애드리브를 던졌고, "박수가 늦다"거나 "여기에서 손뼉을 왜 치냐", "또 속은 거냐"며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연극보다는 스탠드업 코미디나 토크쇼 같은 편안한 분위기였다.

'열린 객석'으로 어둡고 경직된 환경에서 공연을 보기 어려운 관객을 배려했다는 점도 돋보인다. 어린이·노인과 감각 자극에 예민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 발달 장애 관객도 마음 놓고 연극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조치다.

12일부터 15일까지 총 4회차는 '접근성 회차'로 지정돼 음성 해설, 한글 자막과 함께 수어 통역사가 공연에 등장했다. 이 기간 공연 내용이나 대사를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관객을 위해 1층 로비에는 대본이 마련됐다. '국립'극단 다운 세심한 배려였다.

연극 '스카팽' 포스터. 사진 국립극단

연극 '스카팽' 포스터. 사진 국립극단

초연부터 함께해온 이중현(스카팽), 성원(몰리에르), 박경주(실베스트르), 이호철(옥따브) 배우가 이번 시즌에도 관객을 맞는다. 이다혜(이아상뜨), 정다연(제르비네뜨), 이후징(제롱뜨) 등이 새롭게 합류했다. 공연은 다음 달 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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