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에버라드 칼럼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은 북한에 악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이란이 지난 13일 미사일과 드론 360기를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에 한반도 정세가 다시 영향을 받는 순간이었다. 이번 공격을 예의주시했을 북한은 몇 가지 대목에서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지난 10일 공개된 사진에서 김정은은 지도를 펼쳐놓고 서울을 가리키며 “단순히 있을 수 있는 전쟁이 아닌 진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 위협이다. 그런데 이란의 공격을 보면서 김 위원장은 아마도 생각을 고쳐먹었을 것 같다.

이스라엘, 이란 미사일·드론 요격
북한 제조 무기도 이란처럼 취약
장차 북·러 관계에도 악영향 줄듯

에버라드 칼럼

에버라드 칼럼

무엇보다 이란의 공격은 실패했다. 거의 모든 드론과 순항 미사일이 요격됐다. 일부 탄도미사일이 이스라엘 영공에 진입했으나 극히 일부가 목표물에 도달했다. “모든 공격 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이란 당국의 주장은 공허하다. 이란은 이번 공격 결과에 실망했을 것이고, 북한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막대한 재원을 들여 개발·제조 중인 무기가 이번 이란 공격에 사용된 것들인데, 최첨단 대공 방어 체계를 뚫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란이 사용한 재래식 탄도 미사일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탄두 탑재 미사일이 유사하게 취약하다는 말이다.

러시아의 극초음속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인 킨잘(Kinzhal) 시스템도 우크라이나의 요격 미사일에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더 고도화된 운반 수단을 개발·획득하지 못하면 한국의 방어 체계를 뚫는 유일한 길은 엄청난 양의 미사일을 동시다발로 쏟아붓는 것뿐이다. 한국의 방어 미사일을 북한이 수적으로 압도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을 포함한 미사일 양보다 더 많은 미사일을 생산하고 배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둘째, 미국은 동맹인 이스라엘 편에 섰다. 이란이 쏘아 올린 엄청난 양의 미사일 파괴를 위해 막대한 군 역량을 동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필자의 북한 지인들이 “미국은 말로만 동맹 지원을 외치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는데, 사실이 아님이 입증됐다.

셋째, 미국뿐 아니라 영국·프랑스·요르단을 포함하는 국가들도 이스라엘 방어를 위해 자국의 군 역량을 전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북한은 항상 한·미 동맹을 염두에 두지만, 동시에 유엔사(UNC) 회원국이 17개국이나 된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이 발생해도 이들 유엔사 회원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이 은연중에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이번 이란의 대 이스라엘 공격에서 그런 전제는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없게 됐다.

넷째, 새롭게 부상한 이란과 이스라엘 분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영향을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러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은 지속할 가능성이 크고 미국의 지원은 당연지사로 보인다. 미국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비축량을 3000기로 추정했는데, 이번 공격처럼 하루에 110기의 미사일을 발사하면 비축고는 금방 바닥날 것이다. 이란이 예멘의 후티 반군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에도 무기를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라 러시아에 대한 이란의 무기 지원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러시아가 양측의 자제를 촉구한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섯째, 중국은 중동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전쟁에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이 겹치면서 한반도 안정은 중국에 더더욱 중요해졌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의 불장난을 용인할 리 없다. 중국의 경제 원조가 줄어들면 북한엔 큰 문제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에 대해 중국이 반대 목소리를 낮출 것이라는 북한의 희망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측면을 고려할 때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은 북한에 악재다. 북한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고, 북한의 운신 폭을 좁혔고,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제약을 걸었으니 말이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란의 이번 공격에 대해 “위험하고 불필요한 긴장 고조”라며 비난했다. 수낵 총리의 말처럼 이번 공격으로 촉발될 폭력의 악순환은 큰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불안정성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을지도 모른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