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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90문화계(11)|데뷔 두 달만에 인기 차트 1위 석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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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랑일뿐야』의 김민우
올해 우리 대중 음악은 시련을 거듭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환기 적 모습들로 점철됐다.
어느 때보다도 침체의 늪에 빠진 우울한 분위기에서 전체를 압도하며 활력을 불어 넣어줄 가수·노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연초부터 폭력·금품수수 등 비리와 연루돼 된서리를 맞기 시작한 가요계는 KBS사태·방송 구조 개편 등 방송계의 파동과 심야 영업 금지라는 환경의 압박 요인까지 겹쳐 지지부진한 노래들로 거의 히트곡 공백까지 이르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리둥절할 정도로 데뷔하자마자 느닷없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김민우(22)의 등장은 여러 면에서 우리 가요계의 사정을 설명해 준다.
지난해부터 발라드 음악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끊임없는 인기를 지켜온 변진섭 등의 젊은 남자 가수들이 신곡 준비 등으로 활동이 뜸해지던 지난4월 데뷔한 김민우는『사랑일뿐야』로 이 맥을 이어가며 단번에 꼭대기로 올라섰다.
데뷔 두 달여 만에 각종 차트 1위를 장식한『사랑일뿐야』는 신선하면서도 애처로운 목소리에 상큼하고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어우러진 노래로 김민우와 같은 신인들뿐만 아니라 기성 트롯·댄스 가수들까지 지향해 온 새로운 스타일의 대표적 산물로 평가되고 있다.
김민우의 개인적인 매력에 더하여 연예계 비리 사건으로 기성 가수들이 침체하고 젊은 가수들도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던 차에『사랑일뿐야』는 일종의 모범적인 성공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트롯의 전통 가수들도 감상적이고 템포가 느린 곡은 이 같은 발라드에 대적할 수 없다고 보고 빠르고 흥겨운『얄미운 사람』(김지애)·『거울도 안보는 여자』(태진아)·『잠깐만』(주현미)·『갈무리』(나훈아) 등으로 방향을 바꾸어 재미를 보게 됐다.
댄스 음악을 하던 김완선·장혜리 등도 분위기 있는 노래로 바꿔 성공했고 신해철·박학기·조정현 등 신인급 들이 호소한 것도 하나같이 발라드 곡 위주였다.
김민우의 두 번째 히트곡『입영열차 안에서』가 시사하는 올 대중 음악의 성향도 여러 가지다.
데뷔 4개월만에 정상의 히트를 기록하다 갑자기 머리를 깎고 군에 입대하게 된 김민우 개인의 사정은 이 노래와 겹쳐 더욱 화제가 만발했다. 군에 입대한 이후에도 꾸준한 그의 인기는 공연장이나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도 계속돼「노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이후『휴식 같은 친구』『부탁해』등 연속적 히트곡 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또 우리 가요에서 10대 소녀 팬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임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과 상반기에만 히트곡을 냈던 변진섭이 연말에도 각종 상을 차지하는가 하면 별다른 히트곡도 없었던 이선희·박남정 등이 인기가수 대열에서 빠지지 않게 되는 것도 10대 고정 팬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입영열차 안에서』에서 암시되는 것은 신인이 데뷔 히트곡 만으로 수명이 끝나는「반짝」가수가 되지 않으려면 연속적으로 신선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분위기나 방향이 다른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우의 지금까지 히트곡 4곡은 모두 서글서글한 톤의 공통점을 빼면 한 가수의 노래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창법·분위기의 변화가 많다.
또 『입영열차…』에서는 또 부분적으로 발견되는 독특한 퓨전 재즈의 리듬을 차용한 것도 우리 대중 음악의 대세를 가늠하는 징표로 보인다.
올해는 인기와 유명도의 척도이던 방송, 음악 프로가 주춤하는 사이 통칭「언더그라운드 계열」이라 분류되는 젊은 취향의 노래들이 콘서트 등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면서 복잡한 변화의 재즈 리듬과 변조된 화음들이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것으로 됐다.
특히 이런 음악적 경향은 최근 일본 대중 음악계에서의 유행을 부분적으로 베껴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히트곡들이 일본의 최신 유행 음악을 즐겨 듣는 젊은 작사·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데서 기인한다. 김민우의 히트곡을 작곡한 윤상·하광훈 등 젊은 작곡가들을 포함, 발라드 풍의 노래들에서 일본 기성곡의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편 이 같은 젊은 작곡가들의 득세로 음악 생산자들의 세대 교체가 본격화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변진섭·김민우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폭발적인 인기 요소를 갖게 되면 신인으로서의 성장 과정은 생략한 채 단숨에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는「고속」인기가 빈번해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따라 부르기 쉬운「유흥」으로서의 음악보다 감상용의「예술」로서의 음악으로 점차 방향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증거로는 트롯형 전통 음악이 유흥 위주의 빠른 템포로 치닫는데 반해 언더그라운드로 불리며 일부 젊은 팬들만 즐겨 듣던 음악들이 저변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거센 파동을 겪은 가요계는 우리 고유의 훌륭한 대중 음악을 창조해 낼 수 있는가의 기로에서 전환기 적 고통을 앓고 있다.<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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