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체제」가 경계해야 할 함정/새 내각의 진용을 보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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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 대통령은 27일 집권후기를 맞을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노재봉 신임 국무총리서리를 정점으로 한 새 내각이 국정의 활력있는 전개와 개혁의 일관된 추진을 염원해 온 국민적 열망과 기대에 앞으로 어떻게 보답할지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개각을 통해 집권 후반기의 권력 누수현상을 최소화하면서 국정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친정체제의 구축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 같다. 행정경험과 경륜의 측면에서 무명이다시피 한 대통령비서실장을 새 내각 총수에 발탁한 것이나 경제팀 주류 및 「범죄전쟁」의 주무부서인 내무·법무 장관들을 유임시킨 것을 보면 그 점이 두드러진다.
강성면모의 노 총리서리 외에도 인척으로서 신임이 깊은 박철언 체육부 장관,최병렬 노동부·최창윤 공보처 장관 등이 모두 측근참모들이란 점도 그렇다.
이와 같은 평가 위에서 우리는 이번 새 내각이 노 대통령의 통치 후반기의 권력누수 방지에만 비중을 두다가 온 국민이 바라는 개혁과 쇄신정책의 추진에 소홀할까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차원에서는 그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국민의 입장에서도 때이른 권력 누수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반드시 6공정권과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 내각은 행정의 전문성과 일관성 유지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되겠다.
새 내각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산적한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초래될 사회적 불안과 갈등의 심화 및 잠재적 폭발성을 직시,과감한 개혁정책의 추진에 보다 비중을 두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노 대통령은 노 총리서리와 박세직 서울시장의 기용을 통해 차기 집권구도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비쳐 주목된다.
노 내각은 대통령의 집권후반기라는 시점 말고도 우리가 처한 내외환경의 긴박성을 감안하면 참으로 어려운 과제를 안고 출범한다. 우리는 노 내각이 지난 3년간 6공정권이 드러낸 문제점을 깊이 검토하는 선에서 새 국정 방향을 잡도록 권고하고자 한다.
그 첫째가 정부시책에 중심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비전과 정책의 양측면에서 구심점이 결여했기 때문에 찰나적 시류에 흔들리는 미봉식정책으로 흘렀다는 비판을 노 내각은 겸허하게 경청해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확고부동한 정책방향을 제시,실천해야 할 것이다.
둘째,노 정권은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대국민설득력이 극히 약했다는 점이다. 민방문제가 단적인 예다. 새 내각은 새 정책의 시행에 앞서 국민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또 국민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노력을 반드시 병행해야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공휴일 조정문제·내각제개헌 파동 등에서 보듯 수미일관한 정책의 추진력이 대단히 미흡했다는 점이다. 시책추진의 발표만 하고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하는 행태 때문에 국민이 아무도 정부시책을 믿지도,따르지도 않은 선례를 교훈삼아 이제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새 내각의 할 일은 많고 또 엄중하다. 당장 지자제선거의 금권·타락현상을 철저히 막아야 하고 밖으로는 북방외교로 소홀해진 미국 등 전통우방에 대한 불편한 관계의 개선에 전력해야 한다.
모든 국무위원이 혼연일체의 인화를 통해 개혁 속의 안정을 이루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질 때라야만 새 내각에 거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새 내각의 행로를 주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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