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잃은 아빠의 5000개 영상…혐오에 카메라로 맞선 다큐 '바람의 세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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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피해학생의 아버지가 직접 만든 10주기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이 3일 개봉했다. 사진은 '바람의 세월'을 직접 촬영, 연출한 단원고 문지성양 아버지 문종택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 시네마달

세월호 참사 피해학생의 아버지가 직접 만든 10주기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이 3일 개봉했다. 사진은 '바람의 세월'을 직접 촬영, 연출한 단원고 문지성양 아버지 문종택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 시네마달

“단원고 2학년 1반 17번 문지성 양 아빠 문종택입니다.”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3일 개봉)을 만든 문종택(62) 감독은 10년째 자신을 이렇게 소개해왔다.
평범했던 아버지는 2014년 4월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막내딸이 세월호와 함께 전남 진도 바다에 침몰한 그 날부터 투사가 됐다. 그해 8월 8일부터 문 감독은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광고일, 수산물을 취급했던 생업도 다 팽개쳤다. 진도 팽목항, 동거차도,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목포신항, 광화문‧국회 등 세월호 가족이 가는 곳마다 카메라로 기록하고 현장 목소리를 전하는 유튜브 채널 ‘416TV’를 시작했다. 안산 합동분향소 옆 컨테이너가 방송 편집실이 됐다.

세월호 10주기 다큐 '바람의 세월' #단원고 학생 아버지 공동 연출 #10년간 찍은 5000여개 영상 압축 #"다음 세대 세월호 제대로 알았으면"

어민 닻줄에 건져진 딸, 아버지는 투사가 됐다 

다큐에 포착된 세월호 추모 공간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구절이 새겨지고 있다. 사진 시네마달

다큐에 포착된 세월호 추모 공간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구절이 새겨지고 있다. 사진 시네마달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과 공동 연출한 ‘바람의 세월’은 그가 그렇게 3654일간 쌓아온 5000여개 영상을 상영시간 104분에 압축해낸 결과물이다. 총 촬영분량은 50TB가 넘는다. 하루 24시간, 카메라 2대, 스마트폰·노트북 배터리가 닳도록 기록했다. 참사 이후 세월호 사건을 돌아본 다큐‧극영화가 많았지만, 유가족이 직접 연출에 참여한 영화는 처음이다. 세월호 선박 전체를 찍은 전문적인 장면들은 미디어몽구 등 활동가들이 제공했다.
개봉 전 서울 여의도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매서운 눈매였지만, 딸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금세 달라졌다. “다른 세월호 부모님들은 50대인데 저만 60대예요. 결혼 일찍 해서 지성이가 4남매 중 넷째거든요. 특이한 딸이었어요. 엉뚱한 이야기를 곧잘 했죠.” 미소 띤 눈빛에 그리움이 가득했다. “우리 가족이 12년 제주에 살다 안산에 이사 와서, 지성이는 제주도가 고향이었어요. 수학여행이었지만 고향 친구들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했죠.”

영화 '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 10년전 새카맣던 머리는 세월의 풍파를 맞아 백발이 됐다. 그는 다큐 속 내레이션도 직접 맡았다. "돌아보면 찰나 같은 순간 10년의 세월.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하라고, 어떤 이는 가슴에 묻으라고.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적어도 엄마 아빠는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을 다했노라. 아이들 만나는 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10년이 다 된 못난 아빠가 이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랍니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사진 시네마달

영화 '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 10년전 새카맣던 머리는 세월의 풍파를 맞아 백발이 됐다. 그는 다큐 속 내레이션도 직접 맡았다. "돌아보면 찰나 같은 순간 10년의 세월.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하라고, 어떤 이는 가슴에 묻으라고.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적어도 엄마 아빠는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을 다했노라. 아이들 만나는 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10년이 다 된 못난 아빠가 이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랍니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사진 시네마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은 처음엔 생존자 명단에 있었다. 그러나 지성이는 보름여 만에 사고 해역 인근 섬 동거차도 어민의 닻 줄에 걸려 올라왔다.

‘세금도둑·빨갱이’…혐오에 카메라로 맞섰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전남 진도 체육관에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언론의 전원 구조 속보는 곧 오보로 판명났다. 사진 시네마달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전남 진도 체육관에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언론의 전원 구조 속보는 곧 오보로 판명났다. 사진 시네마달

문 감독은 카메라를 든 이유를 “304명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와 제 아이 죽음 앞에 ‘왜’냐는 한 글자를 찾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선원들은 왜 조직적으로 도망쳤고 (승객들한테는) 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집요하게 했는지, 해경은 왜 구조 요청을 외면했는지, 당연히 살아 돌아와야 했던 내 가족, 친구가 왜 죽어가야 했는지….’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한 세월호 피해자‧유족의 질문이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시체 팔이', '세금 도둑', '북한 빨갱이' 등 견디기 힘든 곡해와 혐오였다. 세월호 진상 촉구 단식 현장에서 우파 성향 커뮤니티 회원들은 폭식 농성을 벌였다. 문 감독은 “기록도 부차적 문제고, 싸우기 급급했다”며 "혐오가 하도 심해 현장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게 ‘416TV’ 출발점이 됐다"고 돌이켰다.

인양된 세월호 선체 주변에 추모를 담은 노란리본이 빽빽이 묶여있다. 그 모습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 시네마달

인양된 세월호 선체 주변에 추모를 담은 노란리본이 빽빽이 묶여있다. 그 모습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 시네마달

미디어 공동체 ‘연분홍치마’에 세월호 10주기 다큐를 먼저 제안한 것도 문 감독이다. 문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찍은 영상이 많으니, 이걸로 전문 다큐 연출자가 그간 유가족들의 활동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미디어 활동가들은 오히려 문 감독에게 직접 연출해보라는 역제안을 했다.
용산 참사 이면을 다룬 다큐 ‘두 개의 문’(2012), ‘공동정범’(2018)을 만든 김일란 프로듀서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김 프로듀서는 “문 감독은 처음에 엄청 고민했다. 참사 초기부터 촬영한 영상을 다시 돌아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냐”면서 “다큐의 방향성, 구성적인 틀은 문 감독이 다 만들었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가 '세월호' 참사 과정 제대로 알아야"

지난 10년간 한순간도 놓지 않은 문종택 감독의 카메라엔 세월호 참사 현장부터 촛불집회, 탄핵 정국 등 시대적 풍경이 차례로 담겼다. 사진 시네마달

지난 10년간 한순간도 놓지 않은 문종택 감독의 카메라엔 세월호 참사 현장부터 촛불집회, 탄핵 정국 등 시대적 풍경이 차례로 담겼다. 사진 시네마달

문 감독은 다큐에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10년의 발자취를 빠짐없이 담았다. 첫 장면으로 탄핵 정국을 택했다.
“세월호 가족이 참사 이후 가장 밝게 웃었던 순간이어서”였다. 촛불정국 이후 진실이 밝혀질 줄 알았던 기대가 무너지는 과정도 고스란히 담았다. "국가는 구조에 한없이 무능하다가도 책임 회피와 여론 조작에는 놀랄 만큼 유능했다"는 작심 비판도 다큐에 새겼다.
딸에 대한 그리움, 슬픔 등 개인적 감정은 철저히 배제했다. “아픈 얘기를 던지면 언론엔 그 얘기만 나가고 꼭 써줬으면 하는 얘기는 다 잘리더라”는 이유에서다. 또 “젊은이들이 세월호 사건의 경위는 잘 모르고 침몰한 세월호에 헬기 떠 있는 장면만 떠올리더라. 큰일 나겠다 싶었다”고 했다. “시대적 흐름, 국가가 행한 일들, 피해자‧유가족 반대편 사람들이 우리를 또 다른 죽음으로 몰고 간 말과 행동을 젊은 세대가 보고 느끼길 바랐다”고 다큐 취지를 밝혔다.

"이태원 참사에 통탄, 참사 책임자 처벌제도 마련돼야" 

지난달 26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바람의 세월' 언론시사 후 간담회에는 문종택 감독(왼쪽부터)과 공동 연출을 맡은 미디어활동가 김환태 감독, 김일란 총괄 PD,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사진 시네마달

지난달 26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바람의 세월' 언론시사 후 간담회에는 문종택 감독(왼쪽부터)과 공동 연출을 맡은 미디어활동가 김환태 감독, 김일란 총괄 PD,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사진 시네마달

그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조사 결과물 없이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분명한 진실 규명을 끝내놓지 못한 게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다. 지난 10년 동안 참사 책임자가 처벌받는 제도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죗값으로 이태원 참사를 보며 통탄했다. 이대로라면 사고가 또 터진다”고 그는 경고했다.
문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여당도 야당도 아닌, 생명의 문제”라면서 “국민이 없는 나라는 나라일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김 프로듀서는 “참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사회적 참사를 윤리적·공동체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 참사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이 필요하다”면서 "‘바람의 세월’은 기록의 의미 뿐 아니라 참사 당사자가 정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

이달 극장가에선 ‘바람의 세월’을 필두로 연분홍치마의 세월호 10주기 영화 프로젝트가 이어진다. 먼저 옴니버스 다큐 ‘세 가지 안부’다. 아이의 흔적을 부여잡고 사는 두 어머니(‘흔적’),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현장 취재 기자들의 이야기(‘그레이존’), 생존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단편(‘드라이브 97’) 등 총 3편을 엮어,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상영하고 있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딸과 함께 사라진 기억을 되찾으러 나선 가족의 실화 토대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은 배우 박원성‧우미화‧최덕문 등이 주연을 맡았다. 다음 달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상영과 함께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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