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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노반지교(魯般之巧)와 공수반(公輸般)

중앙일보

입력

노반(魯般)처럼 기계(機械) 따위를 교묘(巧妙)하게 잘 만드는 재주를 노반지교(魯般之巧)라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노반(魯般)처럼 기계(機械) 따위를 교묘(巧妙)하게 잘 만드는 재주를 노반지교(魯般之巧)라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이렇게 유명 배우가 광고의 한 장면에서 말하면 사람들은 생각한다. 가구가 아니라면 대체 뭐지. 침대가 ‘과학’이라고까지 어필하고 싶은 광고주의 마음을 첫 광고에선 바로 추측하지 못한다. 현대인은 불면증에 많이 시달린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잠의 신비에 대해선 계속 연구가 진행 중이다. 실제로 침대는 수면의 질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확연하게 알지 못하는 영역이 꽤 남아있다.

이번 사자성어는 노반지교(魯般之巧)다. 앞의 두 글자 ‘노반’은 ‘노(魯)나라의 유명한 목수 공수반(公輸般)’의 별칭이다. ‘지교’는 ‘~의 재주’라는 뜻이다. 이 둘이 결합되어 ‘마치 노반처럼, 무엇이든 잘 만드는 재주’라는 의미가 된다. 공수반과 묵자(墨子)를 동시대의 경쟁적 동업자 관계로 사람들은 추정한다. 현존하는 53편의 ‘묵자’ 일부 페이지들에 이들 사이의 흥미로운 대결 일화가 ‘장편(掌篇) 소설’ 분위기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당시의 첨단 기술 분야에 일가견이 있었다.

노반은 훗날 중국에서 공인(工人)들이 제사를 지내며 떠받드는 신(神)으로까지 자리잡았다. 그에 대한 기록들에 지나친 과장법이 적지 않은 이유다. 때론 마치 전설 속 인물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겸애설(兼愛說)로 유명한 묵자가 이 노반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정도로 무기 과학에 밝았다는 것도 다소 의외다.

노반이나 묵자와 직접 관련성은 없으나, 일찍이 숫자 계산의 편의를 위해 주판(abacus)을 발명한 것은 중국이다. 화약과 나침반 원리의 발견도 중국이 서양에 앞섰다. ‘동양이 숫자와 과학에 뒤졌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서양이 석탄과 증기기관을 결합하여 새로운 차원의 동력원을 실용화하기 이전까진 중국의 경제 수준이 서양을 살짝 앞섰다.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 논증을 위해 그는 다양한 통계 수치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영국에서 석탄과 인접한 지역에서 증기 기관이 발명된 것도 우연이었지 필연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잠자는 중국을 깨우지 말라’는 조롱이 19세기에 서양에서 유행했다. 이쯤에서 우린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표현까지 오가는 지경까지 동양은 그 시절 왜 그토록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것일까.

그 무엇보다 공업 기술 인력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중앙 부처에서 국가 예산을 다루는 관료들은 항상 농업과 목축에 우선순위를 뒀다. 과학 이론과 제조업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관료들이 농업과 공업 사이에서 최소한의 균형만이라도 견지하며 예산 분배를 설계했다면 분명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한편, 서양의 과학은 의학계에선 페니실린부터 백신까지, 통신과 컴퓨터 분야에선 전기와 모르스 부호부터 이동 전화와 인공 지능까지, 끊임없이 신세계를 개척해가고 있다. 대부분이 원천 기술이다. 누군가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며 또 이상한 논리를 펼친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된다.

“우리 중국은 부족한 게 없어요. 교역 확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메카트니를 단장으로 한 영국 사절단을 접견한 후, 영국왕 조지3세의 서신에 건륭제(乾隆帝)는 이런 투로 답신을 보냈다. 1793년의 일이었다. 그는 청나라의 가장 융성한 시기를 이끈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어 1840년 ‘아편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전개된 세계사는 군함과 대포 등으로 무장한 서양인의 ‘물음표’가 동양인의 ‘따옴표’에게 다가와 거침없이 제압하여 허물어뜨리는 과정이었다.

주역(周易)의 원리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돌고 돈다. 사자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의식도 몸도 침대에서 멀어졌다. 숙면을 취하고 기력을 회복한 동방의 사자들이 서양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반도체 기술 영역에까지 진출해 포효하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서양은 중국과 동아시아의 위협적인 기술 추격을 실감하는 것일까. 허둥지둥 성벽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지금 21세기에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또 한 차례의 공성전(攻城戰)인가.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홍장호. 더차이나칼럼

홍장호.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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