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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단절된 시대에 대화와 ‘눈치’를 권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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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호 26면

사람을 안다는 것

사람을 안다는 것

사람을 안다는 것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뛰어난 배우들은 흔히 “연기는 액션보다 리액션”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전하는 좋은 대화의 방법론도 이와 통하는 데가 있다. 토크쇼를 보자. 잘하는 진행자는 상대의 말에 열심히 귀 기울이고, 추임새를 넣고, 감정을 실어 반응한다.

이 책의 저자는 대화를 잘한다는 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다양한 주제에 날카로운 통찰력을 주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각각 ‘이야기꾼’이나 ‘강연자’다. 저자에 따르면 훌륭한 대화자는 “쌍방향 소통”을, “서로를 이해시키는 상호 탐색”을 유능하게 이끄는 사람이다. 쉽지 않다. 청소년 자녀 때문에 골치 아픈 이에게 ‘나도 안다, 겪어 봤다’고 대꾸하는 사례를 보자. 공감을 의도한 말이겠지만, 실상은 관심의 초점을 ‘나’로 옮기고 상대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행동이란 지적이다.

대화의 기술은 책 제목처럼 사람을 아는 것에 필요한 노력이자, 이 책의 일부다. 서두에 제시하는 ‘일루미네이터’와 ‘디미니셔’의 구분이 좀 더 핵심을 헤아리게 한다. 전자는 다른 사람에게 꾸준히 관심을 두어 사람들이 스스로를 존중받는 존재로 느끼게 한다. 후자는 제 능력을 믿고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다른 사람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끼게 한다. 처칠의 어머니 제니 제롬의 젊은 시절 일화가 흥미롭다. 글래드스턴과의 저녁 자리에서는 이 정치인이 영국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글래드스턴의 경쟁자 디즈레일리와의 저녁 식사 후에는 제롬 자신이 그런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란다. 디즈레일리 같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좋다는 얘기다.

뜻밖에도 ‘눈치’ 얘기가 나온다. 일루미네이터가 된다는 건, 다른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는 일이자, 일종의 기량, 구체적 기술의 종합, 삶의 방식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는 이런 존재방식을 “한국 사람은 ‘눈치’라고 부른다”며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분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라고 풀이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이를 위한 사회적 기술은 이 책의 예시처럼 배우자를 정하거나, 직원을 고용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데 저자가 이를 강조하는 뜻은 그 이상이다. 도덕적 문제이자, 더 나은 삶을 사는 방식으로서다.

저자는 그 맞은 편의 세태를 전한다. 미국의 학교 교육이 예전과 달리 도덕형성을 도외시하고,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로 ‘부자 되기’를 꼽는 대학생 비율이 급증했다고 지적한다. 소셜미디어, 불평등의 확대, 공동체 활동 감소, 활개치는 포퓰리즘 등을 “외로움과 비열함”이 만연하고 사회 구조가 무너져 내리는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지난 10년간 “모든 것이 정치화”됐다고도 주장한다. 특히 ‘인정의 정치’. 즉 사회로부터 존중과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개인적·집단적 감정이나 분노를 동력 삼는 정치를 겨냥해 “그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위와 명망을 얻으며 자신에게 감탄할 방법을 찾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심한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진 친구 얘기도 들려준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힘들 때 ‘힘내’라고 하지 말라는 것처럼, 이 책은 우울증이나 여러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말을 건네려는 하는 대신 그저 곁에 함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짚는다.

이미 여러 권의 저서로 주목받은 저자는 수십 년 경력의 언론인이자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다. 그렇다고 척 보면 사람을 파악하고, 난감한 상대와도 대화를 쉽게 트는 달인이려니 짐작하면 곤란하다. 청년 시절의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 타인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단다. 흔히 사람은,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책의 시각은 좀 다르다. “인간이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인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완성된 작품이라고 여긴다”는 심리학자의 말도 인용한다. 이 책은 대화가, 이를 통해 이끌어내는 인생 이야기가, 그렇게 사람을 온전히 아는 것이 성장과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보는 쪽이다. 단절과 분열의 시대에 이런 시각 자체가 돋보인다.

MBTI 대신으로 제시하는 성격 유형을 비롯해 이 책의 모든 얘기가 무릎을 치게 하는 건 아니라도, 대화나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섬세한 성찰이 곳곳에 반짝인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도 많다. ‘위대한 대화’는 상대의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나쁜 대화’는 상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라는 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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