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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보다 두드러진 비용절감....잡스도, 아이브도 없는 애플[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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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스티브 잡스
트립 미클 지음
이진원 옮김
더퀘스트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애플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뉴욕타임스 애플 담당 기자였던 지은이는 그러한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후계자들이 이 거대 테크 기업에서 주도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지은이는 애플이 잡스 이후 2011년부터 올해 1월 마이크로소프트(MS)에 역전당하기 전까지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기업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잡스에 이어 애플을 맡은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조너선 아이브와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이처럼 매출 신장에선 성공을 거뒀다.

프랑스 파리의 한 애플 스토어의 애플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의 한 애플 스토어의 애플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이 둘의 애플 항로 설정 방식이 서로 사뭇 달랐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대도시 영국 런던 출신의 아이브는 전 세계 소비자를 사로잡으며 애플의 브랜드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킨 베스트셀러 제품을 창작한 디자이너다. 아이팟‧아이패드‧맥북에어‧아이맥G3, 그리고 아이폰까지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제품은 없었다. 이 때문에 잡스의 정신‧의지‧철학을 현실에 구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아이브는 생전의 잡스로부터 ‘애플의 영혼적 동반자’로 불리며 2인자로 자리 잡았다.

지은이가 ‘(미국 시골인) 앨라배마 출신’임을 유난히 강조한 쿡은 오랫동안 아이브의 경쟁자였지만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었다. 아이브가 신제품 개발로 애플의 영혼을 책임졌다면, 구매부서에서 일한 쿡은 재고를 줄이고 부품 공급자를 쥐어짜 가시적 성과를 올렸다.

잡스가 쿡을 후계자로 고른 이유가 이것이라면 쿡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부품을 납품하는 ‘을’들의 땀을 바탕으로 이윤 방해 요소를 ‘벌초’한 쿡은 천문학적 흑자와 시가총액 상승이라는 결과로 답했다. 애플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이룬 지 2년 만인 2020년 2조 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잠시 3조 달러를 돌파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성공의 비결을 쿡이 주도한 비용 절감에서 찾는다.

애플 CEO 팀 쿡이 지난 2월 비전 프로 헤드셋 공개를 위해 미국 뉴욕의 애플 스토어에 도착한 모습. [AFP=연합뉴스]

애플 CEO 팀 쿡이 지난 2월 비전 프로 헤드셋 공개를 위해 미국 뉴욕의 애플 스토어에 도착한 모습. [AFP=연합뉴스]

하지만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지은이는 애플이 지난 몇 년 동안 기존 제품의 ‘변주’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창작’ 기기를 애플워치나 최근 나온 비전 프로 외에는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전 프로도 아이브는 애초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을 혼합해 멀리 떨어진 친구‧가족을 한데 모으는 ‘연결 도구’로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2019년 애플을 떠나야 했고, 결국 비전 프로는 쾌락적인 미디어 소비 수단의 하나로 개발돼 올해 초 출시됐다. 애플의 창조적 영혼을 상징하는 아이브와 기계 같은 비용절감의 대명사인 쿡의 운명은 이처럼 엇갈렸다.

지은이는 그 결과 애플이 혁신의 기업에서 실적 좋은 기업의 하나로 바뀌었다고 비판한다. 애플은 거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본연의 영혼을 잃었고 아이브를 그 대가로 치렀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애플이 지난 1월 시가총액에서 MS에 밀린 이유를 인공지능(AI) 개발 등 새로운 미래에 대한 창의적 비전과 투자 부족에서 찾는다. 애플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애플의 숨은 이야기를 찾기 위해 지은이는 200여 명에 이르는 애플의 전‧현직 임원, 산업디자인팀원, 소트프웨어 엔지니어, 마케터, 구매‧제조 부문 임원 등을 만났다. 쿡과 아이브는 물론 그 부모들까지 접촉했다. ‘보그’ 편집장 애너 윈투어 등 패션 분야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애플의 전‧현직 임직원은 업무에서 얻은 비밀을 절대 엄수한다는 ‘침묵 규약’을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광범위한 취재 결과 애플에 대한 안팎의 평가와 목소리를 고루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제 After Steve: How Apple Became a Trillion-Dollar Company and Lost Its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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