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서 잠들었다 깨어보니 여전히 사막 600m 상공이다. 몸을 조금만 숙여도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 먹을 것은 물론이고 마실 물도 없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날 구해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며 독수리들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영화 ‘폴: 600미터’가 설정한 위기상황이다. 주인공 베키가 이 상황에 놓인 것은 함께 암벽등반을 하던 남편이 추락사하면서다. 슬픔에 허우적거리는 그녀에게 친구는 새롭게 도전해보길 권한다. 사막에 방치된 낡은 송신탑에 오르자는 것이다. 주저하던 베키는 남편이 남긴 말을 떠올리며 결심을 굳힌다. “죽는 게 두렵다면 사는 걸 겁내지 말라(don’t be afraid to live).”
마침내 송신탑 꼭대기에 올라선 두 사람은 환호성을 올린다. 그러나 내려서려는 순간 삐걱거리던 사다리가 송두리째 떨어져 내린다. 둘은 이제 다리 뻗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고립된다. 눈을 뜨기도 아찔한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살 길은 오로지 “사는 걸 겁내지 말라”는 말 속에 있다. 무슨 의미일까. 우선은 “겁내지 말라”는 말이 필요할 만큼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안전하기만 한 삶이라면 겁을 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만큼 심장이 쫄깃해지는 도전에 나서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무섭고 떨리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섭고 떨리는 건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죽으면 무섭지도, 떨리지도 않는다. 막막한 허공 위에 있더라도, 다리가 후들거리더라도 로프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멈춘다면 죽는 수밖에 없다.
한 발 더 내딛기만 하면 되는데 쉽게 포기하고, 후회하고, 핑계를 대곤 한다. 기억하자. 떨리면 떨리는 대로 떨림과 함께 가면 된다. 머뭇대고 망설이기엔 영화 속 대사처럼 “인생은 짧고” “방법은 늘 있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