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광풍제월(光風霽月)과 주돈이(周敦頤)

중앙일보

입력

비가 오고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 광풍제월(光風霽月). 게티이미지뱅크

비가 오고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 광풍제월(光風霽月). 게티이미지뱅크

‘타마더(他媽的)’는 욕설이다. 질투와 다툼이 있는 곳이라면 중국 어딜 가도 꼭 듣게 되는 소리다. 대문호 루쉰(魯迅)은 이 말을 중국의 ‘국민욕’이라고 호칭했다. 본래는 한 문장이었으나, 나쁜 어휘가 모두 탈락되고 형식적으론 무색무취한 세 글자로 변했다.

우리말에도 같은 뜻의 세 글자 욕설이 있다. 과거 중국에서 좋은 가문 출신의 일부는 능력도 없으면서 주로 부계(父系) 조상 덕에 거만하게 굴고 잘난 척했다. 이에 서민들이 그들의 ‘혈통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고 부정하며 아주 독하게 흉을 본 것에서 기원했다. 우리 주변에 여전히 심한 욕설을 뇌와 혀에 달고 사는 이들이 있다. 다행히 한평생 언행이 바르고 이웃이나 사회의 귀감이 되는 인물도 아주 없진 않다.

이번 사자성어는 광풍제월(光風霽月)이다. 앞 두 글자 ‘광풍’은 ‘비 온 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뜻한다. 다음으로 ‘제월’은 ‘비나 눈이 멈췄을 때의 밝은 달’이다. 이 둘이 결합하여 ‘막힘없이 탁 트이는 흉금과 담백한 마음’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인품의 고매함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북송(北宋)의 시인 황정견(黃廷堅)의 ‘염계시(濂溪詩)’에 이 표현이 나온다. 염계는 주돈이의 호다. 광주호(光州湖)에서 가까운 담양 소쇄원에 광풍각과 제월당이 있다. 이 역시 광풍제월에서 두 글자씩 취한 이름이다. 두 건물의 현판은 모두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다. 그는 ‘큰 글자’ 서예에 능했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의 경렴정(景濂亭)도 주돈이와 관련이 있다.

도가와 불교가 성행하던 북송 시기에 유학자 염계 주돈이는 ‘독특한 그림’으로 시작되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저술했다. 그 ‘개념도(槪念圖)’를 얼핏 보면 무극과 태극, 음양, 오행(五行), 남녀, 그리고 만물을 세로로 나란히 정렬시켜 도교의 한 비망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훗날 주희(朱熹)는 심화 해설서인 태극해의(太極解義)를 저술하여, 불교·도교와 선을 긋는 자신만의 이기론(理氣論)을 펼쳤다.

여담으로, 주돈이는 외모에 있어서 키도 작고 전체적으로 아주 볼품없었다. 그의 지인들은 그런 외모 안에 고매한 인품과 호연지기, 그리고 깊은 학식이 깃든 것에 몹시 놀라워했다. 안타깝게도 57세에 병사했다. 주돈이는 ‘이정(二程)’ 형제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주돈이보다 약 100년 후 출생한 주희는 주돈이와 정이(程頤)의 학통을 이었다. 따라서 주돈이를 주희 성리학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푸젠성(福建省) 남안(南安)에서 관리로 근무할 때 주돈이는 이정의 부친 정향(程珦)을 직장 동료로 만났다. 그의 인격과 학식에 반한 정향은 아들 둘을 그에게 보내 배우게 한다. 맹모(孟母)처럼 적극적으로 이사를 감행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는 주변에서 자녀의 훌륭한 스승을 찾아냈다.

주돈이와 이정 형제의 사제지간 인연에서 필자는 다음 두 가지를 떠올렸다. 첫째, 학식 깊은 스승의 중요성이다. 대체로 ‘자기 자식은 직접 가르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통 교육이 실시되기 전엔 좋은 스승을 물색해 자녀 교육을 위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돈이가 동료 덕에 총명한 제자들을 가졌고 주자(周子)라고까지 칭해지며 천추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한 것일까. 아니면 이정 형제가 ‘좋은 질문’을 던져주는 탁월한 스승을 만나 눈을 뜨고 소위 ‘신유학(Neo-Confucianism)의 길을 개척한 것일까.

둘째, 청출어람이다. 공자보다 약 180년 후 태어난 맹자는 아성(亞聖)에까지 이르렀으나 공자를 넘어서진 못했다. 하지만 이정 형제는 학문의 깊이와 넓이에 있어 결국 스승 주돈이를 넘어선다. 문구를 해석하는 훈고학적 사유와 철학적 사색의 차이일 수 있다.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철학의 한 계보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철학적 사색이 얼마나 견실한 청출어람의 탯줄인가를 보여준다.

평소 주돈이는 모란보다 연꽃을 더 사랑했다. 모란이 부귀한 자의 꽃이라면, 국화는 현자의 꽃이요, 연꽃은 ‘군자의 꽃’이라고 애련설(愛蓮說)에서 노래했다. 창덕궁 후원의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도 주돈이의 연꽃 사랑과 관련이 깊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더차이나칼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