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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병훈의 마켓 나우

보조금보다 중요한 정부 주도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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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산업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국가는 없다. 국내외의 안보만 책임지는 야경국가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 반도체의 경우에는 ‘산업이 곧 안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 정책 중에서도 발등의 불은 보조금이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 반도체 산업이 더 발전하게 될까’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급변하는 현실은 신속한 결론을 요구한다.

당장 미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들에 주는 막대한 보조금 규모가 화제다. 인텔은 13조원, 삼성전자는 7조원 넘게 받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라고 조심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다. 미국·중국·일본·유럽은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반도체산업 투자유치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반도체 제조 기반을 이미 어느 정도 구축한 대만과 우리나라는 보조금 지급보다는 투자에 대한 감세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경쟁국들의 보조금 규모가 크다 보니, 최근 ‘우리나라도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물론 보조금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예컨대 고성능 반도체의 생산량 한계가 분명해서 새로운 공급자가 필요한데도 TSMC가 제조분야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은 파운드리 기술격차 때문이다. 이 상황은 보조금을 지급해서 공장을 더 짓는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조금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와 기업 역할 분담의 재정립이다. 정부 주도로 시작한 본격적인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차츰 대기업 주도로 바뀌었다. 정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전문가는 공장용지, 용수, 전기, 소부장 생태계 조성, 인력공급 등을 기업 수요에 맞춰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다. ‘정부 주도로 추진해서 잘된 사업이 뭐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하기 나름이다. 성공 사례가 많다. 경쟁국들은 정부 주도로 차세대 파운드리와 설계 기술 부문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 즉 외부와 협력하여 함께 혁신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의 인텔과 IBM 지원,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TSMC와 일본 소부장 기업 간의 협력 사례는 정부 주도 산업 육성의 성공 사례다.

무엇이 더 경쟁력 있는 전략인지는 이처럼 결과가 증명한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 산업 정책만으로는 경쟁국에 뒤처질 수 있다. 신기술에 의해 시장의 향배가 바뀌는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정부가 보다 주도적으로 개입하여 차세대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정부·대기업·소부장기업·대학·연구기관 사이의 협력을 강화할 때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