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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로켓'에 나 떨고있니? 이마트 주가 왜 35% 폭락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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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한국 유통주, 맛만 보고 끝난 ‘밸류업 수혜’

경제+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질주하고 있는 섹터가 있다. 바로 미국 유통주다. 지난 1년간 아마존 주가는 74.6% 올랐고, 월마트(22.4%)와 코스트코(47.5%)는 최고가를 경신하며 다우지수 상승 폭(19.6%)을 제쳤다. 국내에선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난해 사상 첫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사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이마트(-35.9%)부터 롯데쇼핑(-11.8%), 현대백화점(-5.7%)까지 이른바 ‘전통 유통 3사’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이 저점매수 타이밍일까, 아니면 유통주는 정말 안 되는 걸까?

유통주는 대표적인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섹터 중 하나다. PBR은 시가총액(주가)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1보다 작으면 현재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모두 매각하기만 해도 시총 이상은 된다는 의미여서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저평가돼 있다고 본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마트 PBR은 0.16으로 코스피 전체 925개 종목 중 꼴찌에서 8번째다. 롯데쇼핑은 0.21, 현대백화점은 0.25에 불과했다. 코스피 지수(1.00)뿐 아니라 보험(0.44)·은행(0.46)·증권(0.47) 등 섹터 평균보다도 낮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난 1월 중순 정부의 ‘기업 밸류업’ 예고에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은 유통주를 대거 사들였다. 하지만 ‘밸류업 수혜’는 사라진 상태다. 이마트 주가는 7만원대 밑으로 내려앉았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PBR이 낮다는 또 다른 의미는 기업이 가진 자산이 외부에서 벌어들인 수익보다 낮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가총액이 장부가액에도 못 미친다면 미래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예상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는 얘기다. 사업 전망은 안 좋은데 부동산 등 보유 자산만 많을 수도 있다는 거다.

지난해 기준 이마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0.79%다. 100억원을 투자할 경우 약 7900만원의 손해를 냈다는 것이다. 롯데쇼핑은 1.83%, 현대백화점은 -1.76%의 ROE를 기록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은 미래의 현금흐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다. 또 재무 구조상 3사 모두 수조원 규모의 순차입금을 가지고 있어, 현금 흐름을 확보해도 주주환원을 하기보단 차입금을 갚는 게 급선무일 수 있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연구원)

부진한 실적의 기저엔 경기 부진이 있다. 가계 부채가 늘고 이자비용 부담이 늘어나며 소비심리가 둔화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2개월 중 9개월 동안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높아진 물가 역시 장보기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물론 전반적으로 작황이 부진한 탓도 있지만, 소비자 단체에선 ‘유통사들이 유통 이윤을 높이고 있다’는 의심도 제기한다. 같은 기간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오히려 10.5% 하락했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유통업체들의 농산물 유통비용률(산지에서 소비자까지 유통되는 비용을 백분율로 환산한 수치)은 2012년 43.9%에서 2022년 49.7%로 늘어났다. 김정욱 연구원은 “높은 유통비용률은 판관비를 낮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국내 유통업체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일례로 이마트의 판관비는 2020년 5조5700억원에서 2022년 8조1800억원 규모로 늘었고, 2021년 이마트가 3조4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오픈마켓 플랫폼 지마켓(G마켓)은 테무 등 해외 직구 플랫폼의 습격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월마트는 물건값이 싸기로 유명하다. 데이터웨이브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월마트 매장과 월마트닷컴 상품 가격은 평균 3% 올랐는데 아마존에 판매되는 동일한 상품 가격은 7.5%, 크로거와 타깃에선 9%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켈로그나 프링글스 같은 일상 식료품 10개 품목은 월마트 가격이 아마존보다 평균적으로 17% 싼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업체들이 돈을 벌려면 물건을 싸게 사와서 비싸게 팔아야 한다. ‘싸게 사 오는 것’에 집중한 게 월마트다. 싸게 사려면 바잉파워(협상력)를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점포 수가 많아야 한다. 박리다매 전략이다. 월마트는 미국 점포 수만 4615개이며, 회원제 창고형 대형마트 ‘샘스클럽’과 해외 점포까지 합치면 1만616개로 늘어난다. 이마트 점포 수는 지난해 3분기 기준 154개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유통 환경은 차이가 있다. 미국은 땅덩이가 넓다. 아마존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질주하고 있지만, 당일 배송 서비스는 90개 대도시에서만(지난해 8월 기준) 가능하다.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 월마트는 거의 유일무이한 주요 소매점포고, 실제 미국 인구의 90%가 월마트 점포 10마일(16㎞) 이내에 거주한다. 오래 기다려 비싼 아마존 물품을 사느니, 가까운 월마트 매장으로 직접 가 싼 물건을 사겠다는 수요가 있다.

한국에선 정확히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수도권에 밀집한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다 보니 다수의 소비자에게 당일 배송이 가능해졌고, 신선식품까지 배송 품목이 늘어나면서 대형마트를 가는 대신 온라인에서 쇼핑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유통산업 매출 비중을 보면 대형마트는 2021년 15.7%에서 2023년 12.7%로 줄어든 반면, 온라인 비중은 48.4%에서 50.5%로 늘었다.

암울한 전망 속에서 시장에 대응하려면 대체될 수 없는 업종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가장 비관적인 의견이 나오는 건 대형마트다. 정점을 찍은 인구가 2030년 5130만 명에서 2050년 4710만 명(중위추계)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것부터가 ‘내수로 먹고사는’ 대형마트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신선식품은 쿠팡이나 수퍼마켓·편의점 혹은 식품 특화 플랫폼과의 경쟁에, 생활용품·가전 등은 낮은 가격을 내세운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해외 직구 플랫폼과의 경쟁으로 소비자가 대거 이탈할 여지도 있다.

반면에 백화점과 수퍼마켓, 편의점은 상대적으로 온라인 대체가 힘든 업종으로 꼽힌다. 각각 VIP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신선·가공식품을 사는 가까운 채널로서, 또 현행법상 온라인 판매가 금지된 술과 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작은 마트이자 수퍼’로서 차별점이 뚜렷해서다.

유통주에 이미 투자했고 1년 이상 장기투자 계획이 없다면 연내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매도 타이밍으로 잡는 것이 좋다. 내수 소비 부진으로 당분간 업황 부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몇 안 되는 유통주 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평가의 2024년 소매유통업 전망을 보자.

“소매유통업계 전반의 매출 성장률이 정체되겠지만 오프라인 점포 구조조정 및 운영 효율화, 저수익 사업 축소 등 비용 절감 노력을 기울이면서 일정 수준의 마진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높아진 금융비용으로 인해 보수적인 재무 정책을 유지하겠지만, 집객력 유지와 이커머스와의 차별화된 경쟁력 구축을 위한 오프라인 점포 투자 부담이 상존하고 있어 큰 폭의 재무구조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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