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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테러로 130명 숨져…푸틴은 우크라 배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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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2일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 잠입한 테러범들이 관객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2일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 잠입한 테러범들이 관객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5선 성공 직후 모스크바에서 초대형 테러가 발생했다. 23일(현지시간) 타스통신·CNN 등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전날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청 공연장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폭발물을 터뜨린 용의자 4명 등 관련자 11명을 전부 검거했다. 사망자는 어린이 3명 등 130명을 넘는다. 부상자 120여 명 중 44명이 위중하다. 이번 테러는 2004년 9월 체첸 반군이 러시아 남부 베슬란초등학교를 점령하고 러시아군과 대치하다 인질 334명과 테러범 31명이 숨진 이후 최악의 사건이다.

용의자들은 지난 22일 밤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340㎞ 떨어진 브랸스크에서 경찰의 정지 명령에 불복해 달아나다 검거됐다. 이들이 탄 흰색 르노 차량에서 마카로프 권총, AK-47 소총 개량형인 AKM 돌격 소총 탄창, 타지키스탄 여권 등이 발견됐다. 러시아 국영방송 RT에 따르면 1988년생이라고 밝힌 한 용의자는 텔레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으며, 테러 대가로 50만 루블(약 730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22일 테러는 러시아의 록밴드 피크닉 공연에 모여든 관객들을 겨냥했다. 객석 6200석은 매진된 상태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방탄조끼를 입은 채 오후 7시40분쯤 르노 차량을 타고 공연장 근처에 도착했다. 4명의 테러범은 공연 시작 5분 전 출입구로 들이닥쳐 무차별 총격을 시작했다. 유리 출입문이 깨지고 문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쓰러졌다. 이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 관객들을 조준 사격했다. 생존자 아나스타샤 로디오노바는 로이터통신에 “테러범들은 침묵 속에서 체계적으로 총살했다”면서 “침착하게 한 명 한 명 죽이기만 했다”고 말했다. 패닉에 빠진 수천 명의 관객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면서 생지옥으로 변했다. 일부 관객은 시신들을 넘어 달아났다.

시민들이 공연장 근처 사건 현장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민들이 공연장 근처 사건 현장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테러범들은 공연장 커튼과 의자 등에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수류탄과 소이탄을 투척했다. 건물은 순식간에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사망자 일부는 화재로 인한 독성 연기를 마셔 숨졌다. 공연장 2개 층이 전소했고, 지붕 일부가 붕괴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은 22일 텔레그램 성명에서 “(IS 전투원들이) 공격을 가해 수백 명을 죽이고 부상을 입혔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해 온 ISIS-K는 지난 1월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의 4주기 추모식 폭탄 테러로 80여 명을 숨지게 하는 등 여러 건의 테러를 일으켰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23일 연설에서 “그들은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는데,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며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시사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IS는 23일 자신들이 운영하는 통신사 아마크를 통해 범행 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영상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들이 관객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총격을 가하기 위해 비상계단에 불을 지르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번 공격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ISIS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이달 초 모스크바에서 테러리스트 공격 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러시아 당국과 공유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경고와 관련해 대선 직후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명백한 협박”이라고 받아친 바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과 다른 인간 쓰레기들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미국·영국·프랑스·독일·한국 등은 테러를 규탄하고 위로를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푸틴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보냈다. 한국인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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