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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직접 찾아가 "해고 미안"…칼바람 맞은 이 기업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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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투자혹한기 스타트업 4곳 ‘구조조정’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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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사치, 일단은 생존이다. 고금리·경기침체로 인한 투자 혹한기, 생사기로에 선 숱한 스타트업들 상황이 그렇다. 투자금은 말라가고 시장은 고꾸라지니 남은 런웨이(스타트업이 현 보유 자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는 고작 몇 달이다. 긴축과 비용 절감 압박 속 경영진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폐업하거나, 몸집을 줄이거나. 모두의 손을 잡고선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를 건너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닥을 찍고 회복하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이들은 어떻게 ‘고난의 행군’을 견뎠을까. 피할 수 없었던 위기를 기회로 만든 스타트업 로앤컴퍼니(이하 로톡), 클래스101, 왓챠, 정육각에 물었다. 생존을 위한 스타트업 리빌딩(팀·회사를 다시 만드는 과정)은 무엇이 필요할까.

1. 투명·솔직·보안 ‘감원3칙’…CEO, 팀원 찾아가 설명 

스타트업 호시절은 갔다. 판교 테크노밸리부터 강남 테헤란밸리까지 차가운 감원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시장 상황과 경영 실패를 이유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왓챠(OTT)·직방(프롭테크)·정육각(푸드테크)·패스트파이브(공유오피스)·샌드박스(디지털 엔터테인먼트)·클래스101(에듀테크)·로톡(리걸테크) 등이 몸집을 줄였다. 회원 80만 명을 모은 수산물 커머스 업체 ‘오늘회’, 식품정보 확인 플랫폼 ‘엄선’ 등은 아예 문을 닫았다.

‘고난의 행군’을 촉발한 가장 큰 원인은 시장 상황 변화다. 2022년 시작된 글로벌 금리 인상 여파에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신중해졌다. 정육각 관계자는 “미국 금리 인상 이후 국내 스타트업을 둘러싼 투자 상황이 급변했다”며 “‘긴축 경영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빠르고 민감하게 대응해야 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 경기 침체도 시작됐다. 클래스101 관계자는 “시장이 당초 예상과 달리 빠르게 경색되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보여 부득이하게 조직 개편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왓챠도 “상장 전 투자(pre IPO)를 준비 중이었으나, 거시경제 변화 영향으로 투자 유치가 지연됐다”고 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로톡은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의 갈등이 구조조정 불씨가 됐다. 변호사의 로톡 이용을 금지한 변협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매출 감소 등 금전적 피해가 쌓였다. 회사 관계자는 “사람이 전부인 스타트업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할애해야 했다”며 “사업에 문제없다는 판단을 받았지만, 그 사이 기업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자구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직원들은 “어떤 설명을 들어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반면에 회사는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한다. 정육각은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 계획안을 공지하기 전에 팀원 개개인을 경영진이 직접 찾아갔다. 위기 상황을 가감 없이 설명하기 위해서다. 사전 개별면담을 통해 구성원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최대한 답한 이후 공식적인 타운홀 미팅을 진행했다. 정육각 관계자는 “구성원의 혼란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본환 로톡 대표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컸다”며 “회사 상황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모든 구성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2. 재취업 알선 ‘인연 잇기’…회사 살리자 다시 합류

외부에서 회사 구조조정 소식을 듣게 되거나, 개인정보 관리 부실 등의 이유로 사내에 희망퇴직 신청 명단이 유출될 때 구성원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인재=자산’인 스타트업은 직원과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정육각 관계자는 “나가게 되는 팀원이 채용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대외적으로 구조조정을 최대한 늦게 알리고자 했고 그들의 재취업을 위해 추천·상담 지원 등을 적극 제공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리빌딩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구성원을 절반으로 줄인 로톡은 핵심 서비스인 로톡(변호사 광고)과 빅케이스(판결문 데이터 검색)만 남겼다. 로톡비즈(기업-로펌 연결 B2B), 모든 변호사(변호사 커리어 정보) 서비스는 중단했다. 다만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 서비스는 키우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왓챠도 핵심 사업인 OTT에 집중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추진하던 웹툰 사업은 줄이고, 음원 사업은 중단했다. 지난해 음원 스트리밍 유통을 하던 자회사 ‘블렌딩’도 매각했다.

3. 칸막이 없앤 ‘에자일 조직’…프로젝트 따라 헤쳐모여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에자일(agile·민첩)’한 대응을 위해 조직 구성도 바꿨다. 클래스101은 조직을 고객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회사 관계자는 “예전엔 콘텐트팀과 서비스 개발 조직 간 칸막이가 있었다면, 지금은 크리에이터와 수강생 대상 조직으로 바꿔 다양한 직군이 함께 콘텐트서비스 등을 만들도록 개편했다”고 말했다. 로톡도 직무별 팀 구성에서 벗어나 서비스 중심으로 개편했다. 개발자·기획자·마케터 등 다양한 직무 담당자가 함께 일하는 ‘스쿼드’(목적을 위해 다양한 직군이 협업하는 팀) 체제다.

옆자리 동료가 사라지면 업무 부담이 커진다. 적절한 조정은 필수다. 로톡은 “우선순위를 정한 뒤 일부 서비스는 과감하게 힘을 뺐다”고 밝혔다. 클래스101도 “불필요한 업무를 빼고 운영 자동화· 효율화에 우선순위를 뒀다”고 말했다.

4. 경영 경고등 켜지기 전 비용 절감 시뮬레이션

판단과 대응이 늦어졌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클래스101 관계자는 “시장을 냉철하게 읽고 구조조정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일찍 준비했다면 구조조정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육각은 “2022년 3월 친환경 유기농 전문업체 초록마을 인수를 확정한 직후 금리 인상 등 미국 금융시장 변화가 감지됐는데 국내에 미칠 영향력, 전파 속도 등을 가늠하기 어려웠다”며 대응이 늦었던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재무제표에 경고등이 켜지면 그때야 다급히 인력 감축에 나서는데 이는 가장 게으른 방식”이라며 “임금피크제, 마케팅 비용 절감 등 여러 선택지를 가정해 재무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기업의 중장기 플랜을 세워야 최후의 수단인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풍파가 지나간 뒤 중요한 건 뭘까. 기업 최고인사책임자(CHRO) 출신으로 『구조조정-지금 우리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출간한 최영미 작가는 “바닥에 떨어진 사기를 올리기 위해선 경영진이 새로운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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