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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고바우 만화상' 받은 박수동 화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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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선사시대 한 원시인이 자살하기 위해 절벽 앞에 섰다. 왜 죽으려느냐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그는 멧돼지는 한번에 10여마리의 새끼를 낳고, 나무는 이슬만 먹고도 꽃을 피우는데 인간은 밥먹고 냄새나는 똥만 누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원시인을 끌고 동굴로 간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엄마를 보여주며 할아버지가 던진 한마디. 인간은 물 한방울로 옥동자를 낳는단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만화 '고인돌'의 한 대목이다. 30~40대 한국인들에겐 어린 시절 고인돌과 관련된 추억이 많다. 지금은 폐간된 주간지 '선데이 서울'에 연재됐던 만화 고인돌이 책'고인돌'(까치 刊)로 나온 뒤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보다가 혼이 난 경험이 있는 중년 남성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고인돌은 74년부터 18년동안 연재돼 주간지 사상 최장기 만화의 기록을 세웠다. 성인물이 인터넷을 마음껏 떠도는 요즘 생각하면 웃을 일이지만 당시 고인돌은 '참신한 작품'이라는 찬사와 '저질 외설물'이라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고인돌을 만들어 낸 만화가 박수동(朴水東.62.전주대 교수) 화백이 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3회 고바우 만화상'을 받았다. 독창적인 화풍을 통해 성인.아동만화의 새 장(章)을 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10월의 마지막날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朴화백을 만났다. "소주나 한잔 합시다"는 그를 따라 간 곳은 만화가들이 자주 찾는다는 광화문 삼겹살집. 회갑을 넘겼지만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착한 학생들과 흉허물 없이 어울리면 젊어집니다. 전주만해도 시골학생들이 많아 순수해요. 종강을 하면 교수님 고생했다고 곶감이나 복분자 술을 들고오지요. 학생들과 장난치고 논 지가 벌써 2년반이 지났습니다."

朴화백은 펜 대신 성냥개비에 잉크를 묻혀 그림을 그리는 독특한 화법으로 유명하다. "성냥개비를 45도 정도로 기울여 손길을 따라가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림이 나오기도 합니다. 꼬불꼬불 선의 변화가 다양하고 그래야 맛이 나지요." 朴화백은 일본 후지산 아래 오다하라(小田原)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경남 밀양에 살던 부모가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그를 낳았다. 朴화백이 여섯살이던 47년, 가족들은 연락선을 타고 귀국해 부산에 정착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부산사범학교에 입학했다. 부산사범 1학년 때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의 신문 네컷 만화를 밥상에서 그리는 것을 본 어머니(고 이귀악 여사)는 예언자같은 말을 남겼다. "얘야, 니(너)는 만화그려서 묵고(먹고) 살 팔잔갑다.(팔자인 것 같다)."

졸업한 뒤 그는 고향인 밀양 단산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4년간 어린 학생들과 즐겁게 지냈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 때문에 65년 무작정 상경했다.

잡지사 등 괜찮은 직장을 다니다가도 '만화병'이 도지면 집에 박혀 그림을 그리는 등 직장인과 실업자를 전전했다. 만화로 '밥벌이'를 한 것은 선데이 서울에 '고인돌'을 연재하면서부터. "미국 만화가 조지 하트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기원전(BC) 만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 만화를 헌책방에서 사서 눈이 충혈될 때까지 봤습니다. 그래서 석기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딸기코 감독' '만방아저씨''월급장이 만세''5학년5반 삼총사'…. 그가 창조한 인물은 수없이 많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오성과 한음'이라고 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구구셈을 몰랐어요. 일본에서 귀국해 발음이 똑똑하지 않자 친구들이 '쪽발이'라고 놀려댔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래서 제 만화에는 평범한 아이들의 얘기가 자주 나와요. 공부 잘하고, 싸움 잘하는 아이보다는 중간치기 아이들이 큰소리치는 얘기들이 많죠. 만화를 그리면서 어릴 때 서럽게 살던 시절이 생각나 원고지가 눈물로 얼룩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만화가 점잖아지면 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만화가 야해져야한다는 게 아닙니다. 만화는 만화다워야한다는 뜻이죠. 만화를 그릴 땐 척하지 말고, 허풍떨지 말고, 솔직해야 하고, 목에 힘주지 말아야합니다." 그는 "환갑이 지났어도 아직 욕심을 못버려 참으로 부끄럽다"면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우리 테이블에는 소주 세병이 비어있었다.

김동섭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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