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무주택자 늘어 "골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무주택자의 증가가 최근 독일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약1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독일 무주택자들은 구호기관이 즉각 손을 쓰지 않을 경우 요즘 같은 겨울날씨에는 그대로 동사하는 순수한 의미의 무주택자인 노숙자들이다.
구 서독지역의 무주택자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현재 포화상태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교회나 사회구호시설에 수용돼 있다.
문제는 구 동독지역의 무주택자들이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구 동독은 거주권을 헌법에 명시, 국가가 전국민에게 주택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무주택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 때문에 사회구제시설이 없었다. 물론 이들에 대한 정부나 공공차원의 대책도 있을 수 없었다.
구 동서독이 경제·사회적으로 통일된 7월 이후 구 동독지역의 실업자는 눈덩이처럼 증가하고 있고 이에 비례해 집세를 못내 거리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으나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고 이를 전담하는 인원도 태부족상태이기 때문이다.
구 동독 마그데부르크시의 사회복지과장인 하인리히 존잘라씨는『무주택자들이 어디에 신고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구 동독지역 무주택자의 문제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날씨가 추워지자 이들 무주택자들은 역구내에 정차중인 열차를 숙소로 사용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라이프치히 역에는 북 독일의 로스토크발 열차가 0시55분 도착하는데 경비원들이 조는 틈을 이용, 많은 무주택자들이 열차에 들어가 단잠을 잔다.
여객열차는 통상 문을 잠그지 않은 채 난방은 틀어 놓게 되는데 이 열차는 다음날 오후3시45분 다시 출발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이들은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다.
무주택자들은 또 안전한 숙식을 얻으려고 감옥에 가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있어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마그데부르크 시청직원인 에바 슈니너씨에 따르면 이 시에 사는 한 무주택자는 가게에서 6차례나 도둑질을 했는데도「소원성취」를 못하자 급기야는 한 가정집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 자진신고, 1년6개월의 실형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구 동독지역의 무주택자가 증가하는데는 집세를 못내 쫓겨나는 경우도 있지만 베를린 장벽과 구동서독 국경개방 이후 무작정 서쪽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고향인 구 동독지역으로 되돌아오고 있는데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부와 민간단체는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으나 아직은 묘책이 없는 상태다.
동베를린에 주택 몇 채를 개조해 만든 수용시설이 최근 문을 열었고 라이프치히·마그데부르크 등 대도시에도 구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 청사 등을 개조한 수용시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수용시설 수는 아직 태부족이다.
결국 이들을 수용할 건물을 많이 짓는 수밖에 없는데 주택 한 채 짓는데 1∼2년씩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무주택자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