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성계 왕성한 활동…결실은 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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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올해 여성계는 탁아입법을 위한 노력을 비롯해, 지자제실시 등의 정치계절을 앞두고 정치세력으로서의 여성위상을 정립해 나가면서 내실을 꾀하는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여성계가 펼친 다양한 활동들은 크게 나눠 ▲법률 재정비 추구 ▲남북한 여성교류추진 ▲지방자치제에 대한 여성참여 ▲과소비 추방을 위한 새 질서·새 생활운동 등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하한기조차 없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펴왔음에도 불구하고 탁아관련입법의 성과를 거뒀을 뿐 남북한 여성교류추진은 북한여성 바로 알기 차원에 머물러 있고, 지방자치제에 대한 여성참여도 제도적 보장을 끝내 얻어내지 못한 채 인력양성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과소비 추방을 위한 새 질서·새 생활운동은 경기침체로 인한 사회분위기와 어울려 과소비로 치닫던 발걸음을 일단 머뭇거리게 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각 가정의 실천을 유도하기에는 미흡했다.
여성계의 주요활동 중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탁아법 제정과 세법개정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법률정비 활동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올해 주요사업의 하나로 내건「모성보호」의 하나로 제기된 탁아관련 독립법안은 3월 서울 망원동 저소득층 맞벌이부부의 지하실 방에서 남매가 화재로 질식사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됐다. 평민당 측은 이미 89년 11월 법안을 제출했으나 이 사건으로 민자당 측이 독립법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으며, 신영순 의원(민자)을 중심으로 법안마련토론회(6월), 영·유아 보호·교육법(안) 국회제출(1l월), 영·유아보육법제정(l2월)이 이뤄지게 됐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도 이해를 달리하는 부처간·학계간·여성단체들의 이견제시가 그치지 않아 1년 내내 열띤 논란을 벌였다. 또 법안이 통과된 후에도 민중당이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여성개발원과 가족법학회가 공동 주최한「개정가족법과 한국사회」세미나(6월)로 포문을 연 세법개정을 위한 여성계의 움직임은 가족법학자들의 측면지원을 받아가며 활성화됐다. 이에 따라 ▲가족법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의 성명서 발표(8월) ▲세법개정 청원서 국회제출(8월)로 절정을 이뤘다. 여성계는 ▲배우자간 상속세 폐지▲이혼시 분할 받은 재산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말 것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 사별특별공제제도를 둘 것 등을 요구했으나 배우자의 기초공제액을 1억 원으로 올리고 여기에<결혼연수×6백만 원>을 더한 액수를 공제액으로 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여성계의 법률 재정비 분위기에 편승, 지난해 서대협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업체로 검찰에 고발한 (주)신도리코 등이 검찰의 약식기소를 거쳐 결국 1백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5월), 결혼·임신 후 회사로부터「업무상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해고됐던 (주)문화방송의 두 여성이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 해고판정(8월)을 받기도 했다. 또 헌법재판소는 간통죄는 개인의 인격과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 규정으로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9월).
통일에 대한 뒤늦은 여성계의 관심도 주목을 끌었던 일. 한국부인회의「남북여성교류세미나」(2월)로 물꼬를 트기 시작한 여성계는 한국부인회(4월)·한국여성 단체협의회(9월)에서 각각 남북한 여성단체 교류추진위원회를 구성하거나 구성키로 확정했으며, 한국여성단체연 합도 조국통일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밖에 전국주부교실중앙협회·대한YWCA연합회·한국여성개발원·정무제2장관실 등도 세미나·북한여성연구·기금모금 등의 활동에 나섰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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