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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못줘, 법대로 해!" 미얀마 유학생 울린 초밥집 '믿는 구석' [K유학의 그늘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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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하대 국제학부 5학년인 우즈벡 유학생 쇼키에르 존(23)은 ″한국이 일본보다 학비가 저렴하고 미국보다 치안이 좋아 우즈벡 유학생들이 선호한다″면서도 ″한국 기업이나 한국에 진출한 우즈벡 기업에 취업해 정착하고 싶지만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인하대 국제학부 5학년인 우즈벡 유학생 쇼키에르 존(23)은 ″한국이 일본보다 학비가 저렴하고 미국보다 치안이 좋아 우즈벡 유학생들이 선호한다″면서도 ″한국 기업이나 한국에 진출한 우즈벡 기업에 취업해 정착하고 싶지만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전북 전주시의 한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한 미얀마 출신 유학생 쿄(21·가명)는 마지막 달 급여 50만원을 받지 못했다. 함께 일한 다른 미얀마 유학생 5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대신해 한국어가 능숙한 루나(27·가명)가 업주를 찾아가 급여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업주는 “법으로 하면 내가 이긴다”고 거부했다. 취업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 알바를 했다고 약점을 잡은 것이다.

불법 취업·체류자 양산하는데…K유학은 관리 사각지대

전국 대학들의 생존을 위한 유치전에 K유학생이 매년 급증해 23만명에 육박했지만 관리는 사각지대다. 대표적인 게 ‘시간제 취업 허가’ 제도다. 당장 유학생들에게 학비와 체류 비용의 일부를 벌 수 있도록 ‘시간제 취업 허가’를 내주지만, 출입국 당국에 업주·사업장·급여 등을 사전 신고하는 것을 꺼리는 탓에 허가율은 저조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시간제 취업 허가 건수는 2만1437건으로 전체 유학생(22만6507명)의 9.4%만 취업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시·도 중 유학생 비중이 가장 높은 전라북도 ‘전주시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의 2023년 유학생 노동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201명)의 64.7%(130명)가 허가를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해 출입국 당국이 불법 취업을 적발한 유학생만 1306명으로 이 중 245명이 강제퇴거 또는 출국명령을 받았다.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불법 취업으로 적발된 유학생은 3404명에 달한다. 이에 대해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는 “공부하는 유학생을 전제로 설계한 제도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며 “학령인구 감소로 유학생 유치가 불가피하다고 해도, 일단 많이 유치해 놓고 문제가 생기면 대학과 유학생에게 책임을 묻는 현행 제도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그나마 학교에 다닐 땐 대학이 ‘비자발급 제한 대학’으로 지정되지 않으려 유학생 재정(잔고) 증명 및 학업, 생활 등에 관해 정기 점검을 하지만, 졸업 이후엔 관리 주체조차 없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23 고등교육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문대·대학원을 포함한 국내 학위과정 K유학생 졸업자(2만7321명) 중 국내 취업자는 2253명(8.2%)에 불과했고 국내 진학자는 3004명(11.0%), 본국 귀국자는 7810명(28.6%)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인 1만4254명(52.2%)은 소재 등 졸업 이후 상황이 ‘미상’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2023년 기준 3만5504명)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한국 대학생처럼 취업을 위해 졸업을 미룬 채 5학년이 된 K유학생도 더러 있다. 인하대 국제학부 우즈벡 유학생 쇼키에르 존(23)은 “한국 기업 마케팅이나 무역직에 취업하고 싶어 토익 공부를 하며 졸업을 연기했다”며 “우즈벡 유학생들은 졸업 후 한국 기업이나 한국에 진출한 우즈벡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캐나다 이민부 “올해 유학생 비자 35% 줄이겠다”

유학생만 80만명이 넘는 캐나다는 올해부터 유학생 확대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캐나다는 2022년 한 해만 유학생 출신을 포함한 외국인 이민자 100만명을 받아들여 인구를 2.7%(105만명)나 늘였다. 2022년 전체 신규 영주권 취득자(43만7600명)의 약 12%(5만2740명)가 유학생일 정도로 주요 이민 경로였다.

하지만 캐나다 연방이민난민시민부(IRCC)는 지난달 22일 향후 2년간 유학생의 신규 유입 제한을 핵심으로 하는 내용의 조치를 발표했다. IRCC는 올해 약 36만명에게 ‘스터디 퍼밋(Study permit·유학 비자)’을 신규 발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발급 규모(약 55만명)보다 35%를 급감시킨 수치다.

IRCC는 공립대학과 커리큘럼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사립대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주던 ‘유학 후 취업 비자(PGWP)’도 9월부터 더는 발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해당 프로그램이 최근 몇 년간 유학생 유치에 큰 도움이 됐지만, 대학들의 유학생 관리·감독이 미흡하고 제도의 허점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또 학부 유학생 배우자까지 주던 취업 허가도 석·박사 이상 유학생 배우자에게만 주도록 했다. 마크 밀러 이민부 장관은 “유학생은 캐나다에 매우 중요하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한다”면서도 “수익성 좋은 사업으로 남용의 길을 걷게 된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캐나다 연방이민난민시민부(IRCC) 공인 이민 컨설턴트인 저스틴 심 '둥지이민' 대표는 ″최근 캐나다에선 집값 상승, 불법 취업 등 문제가 커지자 유학생 규모를 2년간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밴쿠버=이영근 기자

캐나다 연방이민난민시민부(IRCC) 공인 이민 컨설턴트인 저스틴 심 '둥지이민' 대표는 ″최근 캐나다에선 집값 상승, 불법 취업 등 문제가 커지자 유학생 규모를 2년간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밴쿠버=이영근 기자

캐나다 정부가 유학생 축소로 방향을 바꾼 건 유학생 증가로 사회 문제가 덩달아 커졌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유학 비자 보유자는 지난 2010년 22만5295명에서 2022년 80만7750명까지 약 4배로 늘었다. IRCC 공인 이민컨설턴트 저스틴 심은 “무분별한 교육기관의 난립과 유학생 급증으로 불법 취업, 주택값 상승 등 문제가 발생했다”며 “학업의 진정성과 지속가능한 유학생 유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IRCC가 강수를 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캐나다는 유학생을 잠재적 이민자로 보는 만큼 IRCC가 유관 부처와 협의해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부연했다.

한국과 유사한 인구 위기를 겪는 일본은 2000년대 중반부터 ‘유학생 유치-취업-정주’를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문부과학성 주도로 정책을 펼쳐왔다. 문부과학성 산하 ‘일본학생지원기구’에 따르면, 2021년 4월~2022년 3월 사이 일본 대학을 졸업한 J유학생의 일본 내 취업률은 37.7%로 집계됐다. 같은 해 K유학생 졸업자 취업율(8.2%)의 4.6배다.

박주현 이민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일본 J유학생들의 성공적 일본 노동시장 진입 요인으로 ▶지역대학-기업-지자체의 협력 체제 구축 ▶지역 기업의 인턴십 기회 제공 ▶유학생 특화 채용 플랫폼 제공 등을 꼽았다.

조영관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변호사). 조 센터장은 "현행 유학생 정책은 기본적으로 고급 인력을 소수 정예로 받아들이도록 비자를 설계했다"며 "우수 인재가 아닌 유학생을 유치해서 예비 노동인력, 고용시장에 진출할 외국인으로 본다면, 비자 설계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손성배 기자

조영관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변호사). 조 센터장은 "현행 유학생 정책은 기본적으로 고급 인력을 소수 정예로 받아들이도록 비자를 설계했다"며 "우수 인재가 아닌 유학생을 유치해서 예비 노동인력, 고용시장에 진출할 외국인으로 본다면, 비자 설계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손성배 기자

“K유학, ‘좀비대학’ 연명 수단 전락해선 안 돼”

이민 정책 전문가들은 “한국도 캐나다·일본 등 이민 선진국처럼 유학생의 유치-취업-정주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설계하고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영관 변호사는 “유학생이 취업해 정착하거나 귀국해 한국 관련 업무를 하도록 비자 설계가 필요한데, 중앙정부부터 책임진 조직은 없고 대학끼리 각자도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민정책연구원장을 지낸 정기선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지역 소멸 위기로 한국 정부도 유학생 취업 및 정주로 정책 방향은 잡았지만 만성 재정난인 대학과 당장 돈벌이를 생각하는 유학생 등 이해관계가 맞물려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른바 ‘좀비 대학’의 연명 수단으로 이민 정책의 큰 축인 유학생 제도가 남용돼 인재 교육이란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K유학 22만명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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