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대행 출판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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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편집대행업자에게 편집과정의 일부 혹은 전부를 맡겨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자기스타일 유지에 고집스럽고 또 대체로 일관작업에 의한 편집공정의 자체완결을 지향해오던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전통적인 보수성향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변화로 보인다.
물론 일본을 비롯한 일부 출판 선진국들처럼 향후 편집의 외주분업경향이 일반화할지 여부를 점치기는 아직 어려우나 적어도 자사 내 편집요원들에게 부과되는 과중한 노동량을 덜고 시간과 비용을 적잖게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편집대행업자를 통한 분업출판은 점점 더 성행할 전망이다.
특히 출판사 사주들 가운데는 이 같은 외주분업출판이 인력관리·노사문제 등의 골치 아픈 행정업무에 드는 노력을 크게 절약시켜보다 좋은 기획에 전념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길사의 경우 현재 편집물량의 3분1정도는 외주를 주어 책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자체사정으로 30종 정도의 단행본을 내는데 그쳤지만 내년에는 적어도 연 1백종 이상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출판사는 일의 증대 분만큼 고정 편집인력을 새로 보강하기보다 외주에 의한 분업으로 단행본출판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그 대신 내부의 기획·관리기능을 강화, 보다 수준 높은 책을 만들어내는 일에 주력하겠다』고 이 출판사의 편집책임자는 말하고 있다.
국내 유수의 단행본출판사로 올해에만 1백종 이상을 출간한바 있는 민음사도 모든 편집과정을 자체 해결한다는 종래의 원칙에서 벗어나 소극적으로나마 출판의 외주분업을 꾀하고 있다.
현재는 단순교정작업만을 외부에 내보내고 있는데 물량은 전체의 20∼30%정도. 외주대상은 대개 민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4∼5년 경력자들로『단기적으로 비용절감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기한을 정해 일을 주기 때문에 시간이 절약되고 사무실공간도 빼앗길 염려가 없어 효율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있다』고 이 출판사의 이영준 기획실장은 밝히고있다.
행림출판사는 내지 본문의 사식과 단순교정작업을 모두 편집·제작지원업체인 서울출판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원고를 넘길 때 대충 레이아웃을 정해주고 마지막필름을 직접 대조해 OK사인을 내는 등 외주를 주고도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서울출판서비스가 여러 출판사와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책 제작에 따른 새로운 시각을 많이 제공해 큰 도움을 받고 있다』는게 출판사 측 얘기다.
민음사 같은 출판사는 아예 편집파트를 두지 않고 단행본의·편집·제작에 이르는 전과정을 서울출판서비스 측에 일임하는 희귀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 경우 출판사대표는 영업부서 직원을 데리고 전적으로 기획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으며『계산해본 결과 20%정도 출간비용을 줄 일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출판계의 이 같은 추세에 힘입어 지난 3월15일 편집·제작지원 전문업체로 문을 연 서울출판서비스는 일찌감치 사업상의 궤도에 올라서고 있다. 입력편집기 18대, 출력기 1대, 수동사식기 1대 등 시설과 함께 미술·전산·편집 등 3개 부서 38명의 인력을 갖추고 있는 이 회사는 현재 20개 정도의 출판사와 거래하면서 월30종에 가까운 단행본 편집을 대행하고 있다.
한편 출판업계의 편집분업화 현상에 대해서 비판적인 눈길을 보내는 인사들도 없지 않다. 한 출판사대표는『애정과 책임을 앞세워 책을 만들어야할 출판인이 분업을 구실로 편집과정을 찢어발겨 남에게 맡기는 행위는 직업윤리 상으로도 석연치 못한 일인 것 같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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