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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구한 건 군대 아니었다...러 경제, 獨제치고 유럽1위 왜 [우크라전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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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러시아가 서방 제재를 무너뜨렸다.”

지난 2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수산업 중심지인 툴라에서 대중 연설 중 이렇게 외쳤다. 그는 “서방은 러시아의 쇠퇴·실패·붕괴를 예측했지만, 우리는 성장했다”며 “맹렬한 제재를 견뎌냈을 뿐 아니라, 유럽의 어떤 나라보다 더 커졌다”고 의기양양해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러시아 군수산업 도시인 툴라에서 열린 포럼에 참가해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러시아 군수산업 도시인 툴라에서 열린 포럼에 참가해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WB "러 GDP, 獨 제치고 유럽 1위"

실제 2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 경제가 예상 밖으로 선전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툴라 연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세계은행 자료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러시아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5조 5000억 달러(약 7330조원)로, 독일의 5조 3100억 달러(약 7100조원, 6위)보다 높았다. 순위로는 유럽 1위, 세계 5위였다.

이 뿐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경제가 지난해 3%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2.6%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의 GDP 성장률을 앞선다.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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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앞서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미국과 유럽연합(EU), G7 등 서방 진영은 전례없는 대(對)러 제재를 시행했다. 전방위적인 제재로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끊고, 크렘린의 전쟁 기계를 멈춰 세우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루블화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하고, 러시아산 원유가의 상한을 낮췄다. 또 해외에 있는 300억 달러(약 40조원) 상당의 러시아 지도층 자산, 3000억 달러(약 400조원)에 달하는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동결하는 등 치명적인 제재를 이어갔다.

효과도 일부 나타났다. 전쟁 초반 루블화가 폭락했고, 가스프롬(러시아 국영 가스 수출업체)과 스베르방크(러시아 최대 규모 국영은행)의 기업 가치는 97% 하락했다. 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의 현금 인출기 앞에 긴 줄을 섰고, 올레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는 요트·축구팀·대저택·신용카드까지 압수당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2월 27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은행 ATM 앞에 돈을 인출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2월 27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은행 ATM 앞에 돈을 인출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푸틴 정권 구한 재무부와 중앙은행"

하지만 러시아 경제는 곧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전쟁 2주년을 앞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는 여전히 발전 중이며, (전쟁을 이어갈) 충분한 여유가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푸틴 정권을 구한 것은 러시아 재무부와 중앙은행”이라며 “이들은 푸틴에게 군대보다 유용한 존재”라고 전했다.  

실제로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과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는 전후 국가 주도로 은행 시스템을 강화하고, 추가 지출을 억제하며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같은 발빠른 대처가 서방 제재의 초기 충격을 완화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냈다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국제경제연구소(WIIW) 선임 경제학자인 바실리 아스트로프는 “러시아 재무부·중앙은행의 활약으로 러시아 경제는 더 큰 위축을 피할 수 있었고, 전시 경제로 효과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설명했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EPA=연합뉴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EPA=연합뉴스

전시 경제로의 전환에 성공하자, 군수 산업이 질주하면서 러시아는 전쟁으로 인해 GDP가 반등하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났다. 러시아의 거시경제 분석 및 단기 예측 센터(CAMAC)는 2022~23년 러시아의 산업 생산량 증가분 중 60~65%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덕분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다.

이미 러시아는 군비 지출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는 '군사 케인스주의'에 접어들었다는 게 전문가·외신의 분석이다. 올해 러시아 국방비는 연방정부 총 예산(36조6600억 루블, 약 534조원)의 3분의 1인 10조4000억 루블(약 151조원)에 달한다. 이는 침공 전 마지막 해인 2021년 대비 세배 증가한 수치다. 2022~23년 전쟁 관련 재정 부양책에 투입된 재정은 GDP의 10%에 해당한다.

"러 경제의 버티기…올 연말까진 유지"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군비 지출이 경제 전반에 새로운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WIIW의 지난달 보고서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러시아 경제는 군비 지출에 더 중독될 것”이라며 “이는 전후 러시아 경제를 완전한 침체·위기의 망령에 빠뜨릴 것”이라고 전했다.

인플레이션이 7~7.5% 치솟고,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가 우크라이나보다 높은 16%대까지 오른 것도 러시아 경제의 압박 요인이다. 미국 재무부의 전직 관료 출신으로 영국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 의장인 마크 소벨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는 실질 소득을 잠식하고 투자를 위축시킨다”면서 “더 큰 고립과 경제 악화가 러시아 경제와 국민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러시아 내부에서도 현 상황이 질적·지속적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해 12월 “자동차의 설계가 허용하는 것보다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는다면, 조만간 엔진이 과열될 것”이라며 “(지금의 방식대로라면) 빨리 갈 순 있지만, 오래 가진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CAMAC 경제 전문가들은 이미 자동차 생산 및 건설 부문에서 경기 침체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핀란드의 신흥경제연구소 역시 러시아의 자동차 생산이 전쟁 이전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다만 러시아 경제의 끈질긴 버티기가 적어도 올 연말까진 지속될 수 있다고 BBC는 전했다. 매체는 “이 시점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이 바뀔 가능성, 우크라이나를 위한 서방의 자금 지원이 줄어드는 시점 등을 고려한 크렘린의 명확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IMF는 러시아의 내년 경제 성장률이 1.1%로 떨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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