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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선입견 깬 「전노협­경찰」/이하경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21일 있었던 전노협 간부 30명의 「집단연행­조기귀가」의 과정은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돼온 경찰과 재야의 신경전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소모적이었는지를 반성케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 집시법·노동쟁의조정법 위반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배중이던 전노협 의장 직무대행 김영대씨(30)를 붙잡아 구속수감했다.
문제는 김씨가 연행될 당시 김씨의 주재로 중앙위원회를 열고 있던 중앙위원 30명에 대한 「싹쓸이 연행」이었다.
물론 재야 노동계의 「실세」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들중 상당수가 현장 활동가들이라는 점에서 김씨 외에도 또다른 수배자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인적사항등 최소한의 사전정보조차 없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신년도 임금투쟁계획을 논의중인 회의 참가자들을 연행한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였다.
연행자들의 반발은 컸고 파문은 걷잡을 수 없었다.
이들은 조사대기를 위한 보호실 입실을 거부한채 서울 중부서 형사계에서 「노동운동 탄압분쇄」등의 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두른채 위원장 석방과 불법연행 사과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악화일로를 걷던 사태는 그러나 전혀 뜻밖의 방법으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성희구 서장은 오후 2시쯤 재야 원로 백기완씨의 방문을 받은 직후 형사계로 내려와 경찰의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이해를 구했다.
그는 김씨 구속이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상 경찰로서는 연행이 정당했고 유죄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른 간부들에 대한 연행에 대해서는 『경찰관습상 일처리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며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성서장은 이들에 대한 조서진행은 「무리수」라고 판단,경기도 부천 경찰서 등 유관경찰서 수사관들을 불러 인상착의에 의한 식별작업을 은밀히 편 끝에 수배자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오후 7시30분쯤 귀가조치가 내려졌다.
경찰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숨기지 않았던 연행자들은 자진해서 대자보를 철거하는 등 청소까지 마친뒤 『업무에 방해를 주어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이 사건은 이제까지 경찰과 재야가 서로 상대방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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