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혼이 귀환한 것 역사에 대한 존경 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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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겸재 정선의 화첩을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조선시대 대표적 화가인 겸재(謙齋) 정선(鄭.1676~1759)의 국보급 희귀 그림 21점을 반환한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의 예레미아스 슈뢰더(42.사진) 원장은 "반환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으며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슈뢰더 수도원장을 만나 겸재 화첩에 얽힌 일화와 반환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반환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의 미술사학자인 이정희 박사는 '한국인 영혼의 한 부분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나의 가슴에 와닿는 무척 감동적인 표현이다. 최근 중앙일보가 보도(11월 22일자 1, 5면)하고 난 뒤 한국인으로부터 감사의 e-메일을 많이 받았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와 기쁘다."

-반환을 결정했을 때 수도원 내외의 반대는 없었나.

"수도원 내부에선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내가 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원로 신부 12명으로 이뤄진 협의회가 만장일치로 반환을 추인했다. 반환 결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독일 언론은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반환이 갖는 의미는.

"베네딕도 수도회의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의 왜관 수도원에 선물한 것이다. 이번 반환의 의미는 특별하다. 다른 강대국들이 약탈 문화재를 돌려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우리 수도원 역사의 중요한 일부다. 과거 수도원이 있던 북한 지역에선 공산화 이후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가 한국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번 반환을 통해 알리고 싶다. 또 왜관의 우리 형제 수도원에 대한 큰 신뢰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의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귀한 문화재를 보관하는 보고 역할을 해왔다. 왜관도 그런 전통을 잘 이어가길 바란다."

-수도원에서 보관 중인 문화재를 외국에 반환한 전례가 있는가.

"희귀 자료를 외부에 공개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영구임대 형식으로 사실상 반환하기는 한국의 경우가 우리 수도원 역사상 처음이다."

-그간 국제 경매업체들에서 팔라는 유혹이 많았다고 들었다.

"겸재 화첩의 가치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뒤 그런 일이 있었다. 1990년대 미국 덴버 미술관의 미술학자 케이 블랙이 정선의 그림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국제 미술상들에게 그 존재를 알렸다. 93년 4월 이곳을 찾은 블랙은 화첩을 본 뒤 '숨막힐 듯한 걸작'이라고 감탄했다. 미술 전문지 '오리엔탈 아트'는 2000년 14쪽에 걸쳐 도록과 해설을 실었다. 그 뒤 각국의 고미술 수집가들이 화첩에 관심을 보였다. 뉴욕 크리스티에선 직원을 두 차례나 보내 화첩을 경매에 부치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돈을 받고 거래하고 싶지 않아 모두 거절했다."

오틸리엔 수도원(독일 바이에른주)=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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