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한 비핵화구상 제시 북, 검토해보고 답하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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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29일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北京)의 댜오위타이(釣魚臺.국빈 숙소와 회담장으로 쓰이는 국영 호텔)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전날에도 같은 곳에서 8시간의 마라톤 협상을 했다.

회동을 주선한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회담 시작 때만 자리를 함께했을 뿐 이후에는 줄곧 북.미 간의 양자 협상이 진행됐다.

연 이틀 총 14시간30분 동안의 회담이 끝난 뒤 미국은 우리 정부에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한 구상을 제시했고, 북한은 이를 검토해 수락 여부를 알려주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중국 외교부는 "북.미.중은 가능한 한 조속히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에 머물며 협상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6자회담 재개 시기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고 외교부에 보고했다.

북.미 회동에서 6자회담 개최 일정에 대한 합의조차 나오지 않자 '협상 실패'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미국과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장시간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발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실패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제안을 검토한 뒤 답을 주겠다"는 북한의 태도를 협상 실패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북한에 ▶모든 핵 관련 시설의 가동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 사찰 수용 ▶핵실험 시설 봉쇄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가로 ▶테러 지원국 지정 해제 ▶에너지 지원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제안했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18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남북한과 미국의 종전협정 체결을 통한 북한의 체제 보장도 언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임에 따라 힐 차관보가 북.미 관계 개선이라는 '큰 그림'을 북한에 제시했고, 김 부상이 이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일단 북한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회담 후 미국이 설명한 '북한 비핵화 구상'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서울=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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