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통령이 '형'이라 부른 남자…한국 팔도서 찍고 다니는 것 [더헤리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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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포토저널리스트 강형원 

더 헤리티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탄 한인 기자. 백악관 공식 사진도 담당했던 강형원씨가 ‘기자’에서 ‘작가’로 돌아와 고국의 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세기의 현장을 기록했던 그가 이제 수천 년의 역사를 깨워냅니다. 백악관 시절 클린턴·부시도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네요. 한국 이름이 어려우니 미국인 모두에게 ‘Hyung’이라 불린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의 이야기입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 포즈를 취한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그는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등을 출간했다. 전민규 기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 포즈를 취한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그는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등을 출간했다. 전민규 기자

1993년 한인 최초 퓰리처상과 1999년 두 번째 수상, AP통신 워싱턴DC지국 총책보도사진에디터, 백악관 사진부 사진가 겸 에디터, 로이터통신 선임에디터. 이런 치열한 이력 끝에 강형원(60)은 2020년 6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1975년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간 지 45년만, 1987년 LA타임스에 입사해 현장을 누빈지 33년 만이었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카메라로 기록해 남기기 위해서였다.

“문화유산 50가지를 정하고 한국에 왔어요. 찍으면서 늘려 100개가량 찍었어요.” 이 결과들을 모아서 개인 도메인(kang.org)에 올리고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2022)을 펴냈다. 지난달 인터뷰한 그의 직함은 ‘포토저널리스트’다.

40여 년 전 한국을 떠났을 때와 천지개벽 달라진 우리 사회에서 그는 ‘한국인 혹은 한반도 거주인의 정체성’을 찾고 질문한다. 이야기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로부터 시작된다. “세계에 수많은 암각화가 있지만 고래잡이를 그렇게 실감나게 묘사한 건 거의 유일하죠. 높이 4m에 이르는 수직 절벽에 300점 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요.”

사진 1 다뉴세문경

사진 1 다뉴세문경

공들여 찍은 유물 중엔 정문경(다뉴세문경, 국보①)도 있다. 약 2400년 전 고조선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름 21.2㎝ 청동거울이다. 수백 개에 이르는 동심원 장식에다 0.3㎜ 간격의 선만 1만3000개다. 손으로 새겨 넣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해 당대의 주조와 거푸집 기술 및 조형 솜씨가 고도의 숙련 단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거미줄 같은 섬세한 선과 기하학적 문양, 수천 년 세월을 입증하는 녹슨 흔적. 청동기에서 철기로 건너온 문명 중 어디서도 이렇게 정교한 유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확신해요. 이 땅에 살던 이들이 다른 문명과 차별화한 조직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 그걸 사진으로 보여주기만 해도 ‘한국에도 언제 가봐야겠네’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겠어요.”

이처럼 그가 한국 문화유산을 찍는 것은 단지 아름다움의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지식의 균형을 바로잡아 주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영어 문화권 독자들에게 상상도 못 하는 역사적인 유적·유물이 한국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널리즘은 눈을 멈추게 하는 힘이 필요해요. 첫인상이 없으면 두 번째 인상도 없죠. 그렇게 첫인상을 강하게 줄 수 있는 사진으로 우리 유물을 소개하는 거죠.”

그가 강조하는 ‘여기 이곳’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들의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조상들의 섬세한 청동거울 주조 기술이 신라 성덕대왕 신종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선 한 단계 나아가 글씨(명문)를 새겨요. 난 이걸 해낸 조상들이 참 일머리가 좋다고 생각해요. 요즘 시대 최첨단 철기문화는 반도체잖아요. 청동기시대 나노 테크놀러지를 발전시킨 일머리가 오늘날 우리에게 계승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뒷모습

사진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뒷모습

책 표지는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뒷모습(②)이다. 왜 이것을 골랐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21세기 이방인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강형원의 관점이다.

“미륵은 일종의 메시아인데 통일신라 화랑들은 미륵신앙에 심취해 전쟁터로 나가면서 ‘나 스스로를 불사르면 가족이 국가의 보호를 받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로이터통신에 있을 때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 자살폭탄 공격자의 마지막을 목격한 사람들에 따르면 다들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자폭했다는 거예요. 천상에 간다고 믿으니까요. 그래서 화랑이라는 미소년들이 전쟁터로 죽으러 가면서 느끼는 환희를 반가사유상의 미소로 표현했다고 이해됐어요. 불상의 뒷모습을 보세요. 딱 10대 소년 신체잖아요. 어떤 실물을 보면서 느낀 것을 한장의 사진에 스토리텔링으로 담는 것, 평생 해온 포토저널리즘이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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