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이 “형” 부르는 남자, 한국 팔도서 찍고 다니는 것

  • 카드 발행 일시2023.12.21

더 헤리티지: 번외편④ 한국 문화유산 찍는 포토저널리스트 강형원

1993년 한인 최초 퓰리처상(로스앤젤레스 4·29 폭동 취재), 1999년 두 번째 퓰리처상(클린턴 미국 대통령 탄핵 및 르윈스키 스캔들, 이상 LA타임스 소속), AP통신 워싱턴DC지국 총책보도사진에디터(1997~2000), 백악관 사진부 사진가 겸 에디터(2000~2001), 로이터통신 선임에디터(2001~2019).

이 같은 치열한 이력 끝에 강형원(60)은 2020년 6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1975년 중학교 1학년 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간 지 45년 만, 1987년 LA타임스에 입사해 카메라로 취재 현장을 누빈 지 33년 만이었다. 은퇴 후 하려고 마음먹은 것, ‘한국의 문화유산을 내 카메라로 기록해 남기겠다’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틈틈이 한국 관련 공부를 했고, 녹슬었던 한국어도 연마했다.

“문화유산 50가지를 정하고 한국에 왔어요. 찍으면서 계속 숫자를 늘려 100개가량 찍었습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 포즈를 취한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그는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등을 출간했다. 전민규 기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 포즈를 취한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그는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등을 출간했다. 전민규 기자

이 결과들을 모아서 개인 도메인(kang.org)에 꾸준히 올리고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Visual History of Korea)』(2022)을 펴냈다. 고인돌, 백제 금동대향로, 토종개, 하회 별신굿 탈놀이 등 유형·무형 유산을 아우른다. 출판사와 2권째도 준비 중이다. 주요한 사진 100점을 저작권 제약 없이 쓸 수 있게 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공유마당’ 홈페이지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기증 저작물로 만나볼 수 있다). 이 같은 공로로 ‘2023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직함은 ‘포토저널리스트’로 표기됐다.

“내가 평생 해온 것이 사진과 저널리즘의 결합, 즉 사진을 통한 스토리텔링입니다. 직장에선 은퇴해도 직업엔 은퇴가 없죠. 한국에서 이런 역할을 인정받고 후배들에게 새로운 롤 모델이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

40여 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한국을 떠났을 때와 천지개벽 달라진 우리 사회에서 그는 ‘한국인 혹은 한반도 거주인의 정체성’을 찾고 질문한다. 그의 렌즈를 통해 비치는 5000년 우리 삶의 기록은 어떠할까. 이제부터 그가 찍은 우리 문화·자연유산의 ‘첫인상’들을 만나보자. 이야기는 그를 처음 사로잡은 울주 반구대 암각화로부터 시작된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에 새겨진 여러 동물과 고래잡이 모습. 포토저널리스트 강형원이 찍어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Visual History of Korea)』에 실은 사진 중 하나다. 사진 강형원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에 새겨진 여러 동물과 고래잡이 모습. 포토저널리스트 강형원이 찍어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Visual History of Korea)』에 실은 사진 중 하나다. 사진 강형원

“세계에 수많은 암각화가 있지만 고래잡이를 그렇게 실감나게 묘사한 건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거의 유일하죠. 높이 4m에 이르는 수직 절벽에 300점 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 중에 작살 맞은 고래, 이리저리 헤엄치는 고래 등이 다양하게 묘사돼 있어요. 이렇게 희귀한 선사시대 유산이 식수댐(대곡천 하류에 위치한 사연댐)으로 인해 멸실 위기란 게 안타깝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제 손으로 꼭 기록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