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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은 자립경제 건설의 보조수단|북한의 무역구조 어떻게 되어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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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소련·중국 등의 「개혁」과 「개방」정책에 발맞춰 북한의 대외무역 활성화여부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80년대 말부터 북한경제가 악화되기 시작, 90년대 들어와서도 경제는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새로운 양극단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소련의 무역 경화결제요구가 상황악화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면 대일 수교 및 경제협력교섭은 위기상황의 극적 탈출구라고 평가된다.
특히 대일 교섭은 북한이 그 동안 소극적이었던 대외교역부문을 중시해 장기적으로 이 부문에서 경제의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태도로까지 해석돼 더욱 주목된다.
일본과의 경협 교섭 자체가 극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북한은 일본과의 경협을 발판으로 국제무역을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를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전략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역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 중앙 집중적 무역조직의 비 탄력성, 경제건설 노선에서 무역을 낮게 평가하는 관점 등 자체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무역관·무역기구·무역노선 등을 알아본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무역은 국가경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중추역할을 한다.
북한도 국가경제에서 무역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경제에서 어느 만큼 무역의 역할을 인정하느냐하는 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와 다르다.
북한의 경제사전(72년 판)은 「무역은 자립적 민족 경제건설을 촉진하며 나라들 사이의 상호협조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완전한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유무 상통하는 상품교환의 한 형태」 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 경제계획수행에서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고 자체 생산에서 모자라거나 생산할 수 없는 것은 다른 나라와 교환하는 행위를 무역이라고 규정하고있다.
따라서 가급적 자급자족하다 안될 경우 무역에 나서는 정도여서 그 규모는 소규모일수 밖에 없다.
북한의 경제를 폐쇄경제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교우위에 입각, 국제분업의 토대에서 이윤동기에 따라 「장사가 되면」 서슴지 않고 수출·수입에 나서는 자본주의의 무역 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같은 북한무역의 특징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째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무역자체가 목표이자 국가경제의 중추로 간주되는데 비해 북한에서의 무역은 「자립경제건설의 보조수단」 정도에 그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무역을 국가가 주도해 적어도 국가의 직접감독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 번째로 무역에 있어서「완전한 평등」과 호혜의 원칙을 강조한다.
즉 무역을 통한 이익은 거래 당사자간에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역노선>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에서 무역의 역할을 최소화시킨다는 것이 북한대외무역의 일관된 방침이었다.
경제의 대외의존은 곧 정치의 대외예속을 불가피하게 초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건설초기단계에는 이 같은 원칙이 엄격히 지켜져 왔으나 71년 6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대외무역의 필요성은 점차 크게 인식되어 가는 추세다.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권과 「물물교환식」의 무역이 주류를 이루었던데 비해 74년에 와서는 대서방무역과 대사회주의권 무역이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던 점들이 이를 보여준다.
최근의 대일 경협 추진, 대서방경제외교 등도 경제건설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격상되어 가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들이「자력갱생」노선을 벗어나 시장경쟁 및 국제무역의 강점을 인정하는 추세로 나가는 것도 북한으로 하여금 무역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자립적 경제건설」로 표방되는 폐쇄경제노선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것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무역방식>
북한무역방식의 주형태는 구상무역 방식이다.
구상무역은 일종의 물물거래로 예를 들어 북한에서 소련으로 1백원어치를 수출하면 소련도 북한으로 1백원어치를 수출, 수지 균형을 맞추는 무역방식이다.
이 같은 거래는 외화가 중간에 사용되지 않는 등의 이점이 있어 사회주의권 국가와의 무역에 주로 이용돼왔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수입대금 지불이나 외채의 상환시 금·은 등 귀금속과 무연탄·시멘트·명태 등의 현물수출로 대신하거나 합작 등을 통해 생산되는 물품으로 변제해 왔다.
북한은 매년 초 사회주의국가들과 무역협정을 맺고 연중거래총액을 결정한 다음 거래차액이 생기면 차액만을 청산하는 방식을 취해왔었다.
실무적으로는 북한의 중앙은행과 상대국의 특정 은행에 무이자 청산계정을 마련해 수입과 수출액을 상쇄시키고 그 차액은 다음해로 넘겨 1·4분기 내에 루블화로 결제해 왔다.
이 같은 사회주의국가와의 무역협정은 반드시 이윤원리에 따르지 않고 각국정부의 친소 관계 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협정은 정치적 성격을 많이 띤다.
북한경제가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것도 북한무역의 대종이 정치적 배려의 성격이 강한 구상무역이기 때문에 내년부터 소련이나 동구사회주의국가들이 정치적 배려를 없애고 시장의 원리에 따른 자유 무역을 할 것을 요구할 경우 외화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북한으로서는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소련과 북한은 이미 지난11월2일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띤 구상무역을 줄이고 각각의 상품을 국제시세에 따라 외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했다.
동구각국 및 중국도 조만간 이와 같은 방식의 무역을 북한에 요구할 것으로 보여 북한이 구상무역의 테두리를 빨리 벗어나거나 품질개량·외화가득률 제고 등의 방향으로 나가지 않으면 경제 어려움이 쉽게 극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방 국과의 무역은 자본주의국가사이의 무역과 큰 차이가 없다.
신용장은 기본으로 행해지며 결제는 북한의 은행과 런던·홍콩·취리히 등의 제3국 은행간에 미리 지정된 통화로 그때그때 이루어진다.
주로 사용되는 통화는 파운드·마르크·프랑이며 엔 및 달러도 가끔 사용된다.

<환율 및 관세>
자본주의사회에서 환율은 수출입상품가격수준·국제수지상태·화폐구매력 등을 종합한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되지만 북한은 다르다.
공정환율은 「국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완전한 평등과 호혜, 내정불간섭과 자주성의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
요컨대 공정환율은 시장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의도를 반영한다는 말이다.
공정환율은 대개 루블화의 대 서방화폐공정 환율을 매개로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정환율은 무역시세를 반영 못해 실제 무역에는 무역 환율이 사용된다.
이는 특정국가를 상대로 1년 동안 거래해온 수출입물자를 북한의 도매가격으로 평가한 총 화폐 가치와 무역상대국 도매가격으로 평가한 화폐가치의 비율이다.
무역환율은 공식환율보다 약50%정도 낮게 평가된다.
그러나 무역환율도 북한의 무역 규모가 작고 품목수도 적기 때문에 현실적 구매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밖에 일정기간동안 한 가정이 생활필수품에 소비하는 금액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결정하는 비 상업환율이 있다.
비 상업환율은 무역외거래·가본거래에 사용된다.
북한무역에서 독특한 점은 무역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역이 국가의 계획 아래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역상품에 대해서는 부과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외국여행자들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일부소지품·국제소포등 비무역품에 대해서만 관세를 부과하고있다.

<무역기구>
무역은 국가가 계획, 지도한다는 원칙아래 무역기구가 조직되어있다.
북한무역의 최고 담당기관은 정무원 무역부다.
무역부는 북한과 대외관계가 있는 국가들의 무역을 관장하며 대외관계가 없는 국가의 무역은 무역부산하 조선국제무역 촉진위원회가 맡는다.
정부기관과 촉진단체의 지도아래 개별무역회사들이 무역업무를 맡는다.
무역회사들은 광산물은 조선광산물 수출입상사, 수산물은 조선수산물 수출입상사 등 상품별로 구성되어있다.
국가자체가 우리로 치면 하나의 종합무역상사인 셈이다.
주요 무역관계기관의 성격 및 기능은 다음과 같다.
▲무역부=무역정책과 무역계획 외 수립, 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 등을 담당한다.
▲대외경제사업부=70년대 초 플랜트 수입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시장개척 및 수입조건의 개선을 위해 무역부로부터 독립되어 설립된 기구다. 외국과의 무역상담, 시장조사 및 개척, 외국투자 유치, 기술도입, 외국에 대한 경제지원 등을 한다.
▲대외경제위원회=무역부 등 대외경제관련 부서와 협조, 합영사업 또는 외국과의 경제 협정체결 등에 북한측 대표로 참여하는 등 경제외교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무역대표부=외교 관계가 없는 국가들과의 무역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두는 기구, 같은 기능을 가진 기구를 외교관계가 있는 국가에도 두는데 명칭은 무역 참사부라고 불린다.
▲무역상사=외국의 상사들과 무역계약을 체결하고 실무를 담당한다.
독립채산제를 원칙으로 운용하나 필요에 따라 중앙예산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이윤의 일부를 국가에 납입하기도 한다. 현재 1백 개 이상의 무역 상사가 설립되어 있다.
이밖에 선박·수출입 화물의 보험업무를 담당하는 조선국제보험회사가 있고 운송담당기관으로는 조선대외운송회사·조선외국선박사업회사·조선용선 회사·조선동해해운회사 등이 있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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