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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공부하는 곳 아니다"…학부모·교사 17명의 충격 증언 [hello! Parent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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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학습이 사라진 학교

올 한 해 초등학교는 사건·사고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지난 7월 서이초 교사 사망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제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왕의 DNA 사건’ 등 전국 각지에서 교사를 상대로 한 학부모의 갑질 고백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죠. 대체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양측의 대립이 날로 심해지는 걸까요? hello! Parents는 7회에 걸쳐 2023년 대한민국에서 학교가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짚어봤습니다.

학교는 더이상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hello! Parents가 각각 2시간가량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학부모 8명과 교사 9명, 교수 2명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쪽은 학교에 자신의 아이를 맡기고 한쪽은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로 다른 입장이지만, 문제의식은 같았다. 2011년 서울을 시작으로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중간·기말고사)가 사라지는 등 학교의 가장 주된 기능인 ‘지식 전달’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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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기능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관되자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권혜선(가명·43·서울 강남구)씨는 “아이가 아프면 학교는 빠질 수 있어도 학원은 쉽게 빠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3이었던 아들은 학교 영어 수업 첫날 교사가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켰다고 했다. 모두가 학원에서 영어를 배웠다는 전제하에 학교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평가는 사라졌지만, 학습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다. 대입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생활기록부에 쓰여 있는 몇 줄짜리 글로는 아이의 진짜 수준을 가늠할 수 없는 탓이다. 12세 아들과 10세 딸 쌍둥이를 키우는 최은혜(가명·38·경기 성남시)씨는 “객관적인 성적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 가맹 학원 아이들과 비교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을 보낸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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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나는 이들도 늘어났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업 중단 학생은 2020년 3만2027명에서 지난해 5만2981명으로 3년 새 65.4% 늘어났다. 이들은 원하는 것을 찾아 국제학교, 대안학교, 홈스쿨링 등으로 눈을 돌렸다. 23세, 19세 자매를 대안학교에 보낸 장예안(49·세종시)씨는 “학교에선 여전히 근대화를 위한 공장식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 똑같은 교육이 아닌 맞춤형 교육으로 만족도도 높아졌다. 이윤주(가명·40·서울 서초구)씨는 “첫째(12)가 몇 년씩 선행학습을 하고 온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 든 모습에 국제학교로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시험을 보고 매일 숙제를 내줘도 학교 공부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교사의 역할도 변했다. 학교에서 학습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학부모는 교육이 아닌 보육을 원했다. 학원에서는 불가능한 생활 지도나 사회성 함양을 바랐다. 충남 천안의 공립초 교사 이서은(가명·36)씨는 “예전에는 ‘혼내서라도 잘 가르쳐달라’던 학부모들이 시험이 사라지면서 달라졌다”고 말했다. “골고루 먹게 해달라” 등 어린이집에서 할 법한 요청이 쇄도했다.

민원은 더 큰 갈등을 잉태했다. 『괴물 부모의 탄생』을 쓴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06년 일본에서도 서이초와 흡사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내 아이 먼저 챙겨달라”며 교사를 괴롭히는 ‘괴물 부모’가 탄생했고, 이런 과보호가 독이 든 양분이 되어 ‘괴물 자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몇몇 개인의 일탈로 여겨졌던 문제가 전 사회적 현상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정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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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은 교사의 의욕까지 꺾어버렸다. 공립초 교사 김수민(가명·33)씨가 5년간 대치동에서 근무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민원 들어오니 하지 말라”였다. 과학 실험도, 체험 학습도 민원이 앞을 막았다. 7년 만에 교직을 그만두고 논술학원을 차린 오소라(가명·33)씨는 “이제야 마음껏 가르친다”고 했다. 사정이 어려운 아이에게 나머지 공부를 시킬 만큼 열정적이었지만, 민원에 무기력해진 동료 교사들이 그를 말렸다.

서울 관악구 공립초 교장 조혁진(가명·53)씨는 “시스템이 교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버렸다”고 지적했다. 2004년 제정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과 2011년 신설된 아동복지법 17조 5항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한다’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교사의 훈육은 아동 학대가 됐고, 학교폭력은 애들 싸움에서 어른 싸움이 됐다.

무기력에 빠진 학교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1990년대생, 교사가 되다』를 쓴 박소영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학교의 학습 기능을 되살리고 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는 교과과정과 학생에 대해 지금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학부모 교육을 강화해 학교와 교사에 대한 이해도를 제고하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