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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스트레스(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은 대개 호텔이나 큰 길가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승객과 눈이 마주치면 으레 웃는 얼굴로 어딜 가느냐고 묻는다. 행선지를 대면 군말없이 떠난다.
모두들 집 찾는덴 귀신이다. 사통팔달로 뚫린 골목길을 바람처럼 빠져 나가며 승객이 원하는 곳의 바로 코앞에 차를 대준다. 요금은 미터기에 나온 값에 10% 팁을 얹어주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끝난다.
서울의 택시는 모든 것이 거꾸로다. 운전사들은 웬일로 하나같이 화난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승객은 미리 주눅들어 운전사의 눈치를 살펴가며 말을 잘 해야 한다. 행선지를 잘못대면 운전사는 들은척도 하지 않는다.
비로소 택시에 올라타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합승하는 사람과 궁합이 잘 맞아야지,그렇지 않으면 뚱딴지같은 곳에 내려준다. 좀 후미진 곳이나 달동네는 감히 가자는 말도 못 꺼낸다.
요즘은 여기에 스트레스가 하나 더 보태졌다. 운전사가 승객을 골라 태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승객 쪽에서도 택시를 제대로 골라타야 하는 세태가 되었다. 자칫하면 변을 당해도 끔찍한 변을 당하기 쉽다.
서울의 택시인심이 어쩌다 이 모양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하는 말로 사납금이 얼마고,지입제가 어떻고,도로 사정이 아무리 엉망이라지만 사람의 훈기까지 말려버렸다. 서울의 택시는 쳐다보기만 해도 불쾌한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 일을 감시해야 할 당국은 꼭 우리 속담에 나오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격이다. 택시요금 올려줄 때면 누구 들으라는 듯이 무단합승을 없애고,바가지 요금을 엄벌하며,서비스를 개선한다고 큰 소리 치고는 한번도 그대로 되는 일을 본적이 없다. 당국이 편을 들었다 하면 업자편이지 시민은 눈밖이다.
제도가 나쁘면 고쳐야 하고,운전사의 교육이 부족하면 마땅히 더 해야 하고,자질에 문제가 있으면 면허를 제한해야 할텐데 당국은 말한마디로 시비의 순간만 모면하면 그만이다.
시민들이 「택시 스트레스」하나만 벗어나도 한결 기분이 좋을텐데 그 소원도 못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행정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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