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정나라 자산의 작은 그릇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나는 기국(器局), 곧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이 넘치는 사람이 때를 만나지 못해 그 자신의 삶이 불우하고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안타깝지만, 깜냥이 아닌 사람이 자리에 앉는 것도 본인이나 나라에 불행한 일이다. 모자가 너무 크거나 작은 것은 흉해 보인다.

어느 날 맹자가 길을 가다가 정(鄭)나라에 들르게 됐는데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리 제후 자산(子産·사진)은 참으로 어진 분이었다”며 칭송이 자자했다. 이 말을 들은 맹자는 “그가 무슨 일을 했기에 그토록 인자하다고 칭송하오”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주민들의 말이 이러했다.

신영웅전

신영웅전

어느 날 자산이 이 마을을 지나게 됐는데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장대 같은 비가 쏟아져 개천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출타했던 마을 사람들이 물에 막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본 자산은 자기의 수레를 이용해 주민들을 건네주었으니 얼마나 인자한 제후냐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맹자가 탄식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 제후가 어진 사람일는지는 모르나 주민들이 개천을 건너게 해주는 일은 제후가 할 일이 아니라 그 동네 구장이 해야 할 일이다. 자산은 그곳에서 주민들을 일일이 건네줄 것이 아니라 어서 돌아가서 어찌하면 홍수가 나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그 개천에 다리를 놓아줌으로써 그곳 주민들이 영원히 편하게 살 궁리를 해야 했다.”(『사기 열전』)

맹자가 이 대목에서 말하려 한 것은 지도자에겐 각기 할 일이 있고 하지 않을 일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맡은바 분수가 있는 법인데 그것은 자기 그릇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군수가 앞에 나가서 대통령이 할 일을 주제넘게 하는 것을 참월(僭越)이라 하고, 대통령이 독도를 찾아가 울릉군수의 일을 하는 것을 용렬(庸劣)이라 한다. 한국사회에선 이것조차 구분이 잘 안 된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