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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원 더 줘도 서울 안갑니다" 이런 시골 의사들의 비결 [지역의료, 희망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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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이 병원에서 계속 진료해 주세요.”

최준(54) 거창 적십자병원장은 요즘 들어 70, 80대 초고령 환자들에게서 부쩍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최 원장이 휴가라도 다녀오면 “선생님이 없어 매우 섭섭했다”고 말한다. 최 원장은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부산을 거친 뒤 2013년 4월 대구의 개인 병원을 접고 거창적십자병원의 내과과장을 맡았다. 2020년 3월 원장이 됐다. 요새는 하루 많게는 100명, 적게는 8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최준 거창 적십자병원장이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 적십자병원

최준 거창 적십자병원장이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 적십자병원

최 원장은 “시골에는 노인 환자가 많다. 환자와의 친밀도·신뢰도가 중요하다. 환자들이 늘 고마워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꼼꼼하게 환자를 진료해서 이상징후를 발견해 환자를 살린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소화불량 환자가 있었는데, 뭔가 의심돼 심전도를 찍어보니 심근경색이 의심돼 대학병원 응급실에 보냈다. 환자는 “당신 덕분에 살았다”고 고마워했다. 뇌경색이나 급성 심근경색 등이 의심되면 환자 손에 진료 의뢰서를 쥐어주거나 자녀에게 직접 연락해 꼭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고한다.

최 원장은 “시골에는 의사 손길이 더 필요한 환자가 많다”며 “인프라가 부족하니 불편하고 주저할 수 있지만 서울보다 보람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최 원장은 단호하게 말한다. “나를 믿어주고 나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너무 많은데, 어떻게 거창을 떠날 수 있느냐.”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건복지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건복지부]

수도권의 잘 나가는 의사도 있지만 ‘시골 의사’들이 간당간당한 지역의료를 받치고 있다. 고액 연봉, 문화 생활, 좋은 교육 여건과 거리가 멀지만 묵묵히 환자를 지킨다. 울산광역시 동강병원 김연선(49) 갑상선외과 주임과장은 진료 대기 석달이 넘는 유명 의사이다. 환자 카페 ‘갑상선 포럼’에서 칭찬과 추천이 줄을 잇는다. 일부 환자는 “서울에 (진료 받으러) 안 가고 김 과장님 믿고 여기서 (진료) 받는다”는 글을 남겼다.

김연선 울산 동강병원 갑상선외과 주임 과장이 환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동강병원

김연선 울산 동강병원 갑상선외과 주임 과장이 환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동강병원

김 과장은 대구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레지던트와 전임의를 마쳤다. 2007년 울산에 발을 들여놓았고 1년 있다가 서울로 가려 했다. 게다가 ‘지역 의사가 제대로 수술할까’라는 왜곡된 시선이 괴롭혔다. 그러나 “환자들이 서울 가지 않고도 제대로 진료받게 하자”란 생각으로 임하니 환자가 몰려들었다. 인근 부산과 경남, 호남에서도 찾는다. 10여년간 5600명을 수술했다.

김 과장도 한 때 수도권행을 고민했다. 그러나 고령 환자가 손을 잡고 “안 갔으면 좋겠다”며 간청하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김 과장은 “지방 환자들이 서울 병원 다니려면 교통비가 많이 든다. 내가 조금만 열심히 하면 된다"며 "지역으로 오려는 의사에게 인센티브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목포의료원에서 6년째 근무 중인 김동민(43) 내과과장은 광주에서 의대를 나와 대전에서 수련했다. 이후 “지역 출신으로서 지역을 지켜야겠다”고 마음 먹고 귀향했다. 김 과장은 “중소병원이다 보니 내과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힘들지만 보람되고, 그러니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출신이 지방 의대를 나오면 다 올라간다. 파격적으로 대우하거나 이쪽(지방) 대학 출신이 이쪽에 근무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민 목표의료원 내과과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목포의료원

김동민 목표의료원 내과과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목포의료원

경북 포항에서 15년 진료한 조광연(47) 에스포항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1000만원, 2000만원 더 준다고 직장을 옮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좋은 동료와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게 사는 재미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펠로(전임의)를 마치고 2008년 포항에 갔다. 그는 3, 4년 일하고 개업 자금을 마련해 서울 가려 했는데 살아보니 지방도 살 만하다 싶었다"며 “지방엔 의사가 많이 부족하다. 내 존재 가치가 더 크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조씨는 “우리가 먼저 해결하고 잘 모르면 대학병원에 연계해서라도 환자를 평생 책임진다는 것이 병원의 모토”라면서 “우리를 믿고 찾는 포항 시민들이 많아졌다. 치료받고 잘 사는 환자를 보면 보람을 느낀다. 인근 지역 큰 병원으로 이송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숨지는 환자를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광연 에스포항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있다. 사진 에스포항병원

조광연 에스포항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있다. 사진 에스포항병원

차우헌(48) 서울차비뇨기과의원 원장은 경북 영덕군의 유일의 비뇨의학과 전문의자 의학박사이다. 인구 3만5000명의 작은 지역이지만 비뇨의학과를 찾는 노인 환자가 적지 않다. 차 원장은 “와보니 정말로 의료 불모지라고 느낀다. 7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그동안 불편을 참다가 생전 처음 비뇨의학과 진료를 받으러 온다"고 말했다.

차 원장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하다 2013년 경북 김천의료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김천의료원에 가보니 비뇨의학과 의사는 없는데, 환자는 많아 마음에 걸렸다”고 말한다. 의료원 측이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요로결석, 전립선 비대증, 방광암 환자가 몰려들었다. 충북에서도 찾았다.

차우헌 서울차비뇨기과의원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서울차비뇨기과의원

차우헌 서울차비뇨기과의원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서울차비뇨기과의원

대학병원 6~7 곳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우리 지역도 비뇨의학과 불모지니 도와달라’는 영덕군수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고 3년 전 의원을 열었다. 차 원장은 “거창한 사명감으로 지역에 남은 것은 아니다”면서 “김천도 그렇고 영덕 이곳도 그렇고 막상 와보면 ‘아, 이곳이 나를 진짜 필요로 하는구나’하고 느낀다. 지역 의사가 된 걸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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