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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대학' 8년 전부터 평가…'학문 상아탑'에 갇힌 대학 깨다 [2023 대학평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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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5월 한국공학대 메카트로닉스학부 AI로봇전공 학생들이 지능로봇 실습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공학대

지난 5월 한국공학대 메카트로닉스학부 AI로봇전공 학생들이 지능로봇 실습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공학대

“대학의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민족의 생존전략과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앞두고 대학교육의 질 향상은 대학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 과제가 됐다.”

1994년 9월 23일 중앙일보 1면에 실린 제1회 대학평가 기사 내용이다. 30년 전 첫 선을 보인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변화에 둔감했던 국내 대학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대학의 역할을 빠르게 전달하고, 대학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시작했다. 국내 대학의 30년 간 변화는 역대 대학평가 지표에도 반영돼있다.

대학의 학생 창업 지원 강조…창업 지원금 2배 증가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은 ‘창업기지로서의 대학’은 대학평가가 8년 전부터 강조해온 평가 지표다. 기술발전·산업지형의 변화 속에서 학생의 창업 능력을 키워주는 게 대학의 주요 역할이라고 보고, 2015년부터 창업 관련 지표를 도입했다. 당시 학교당 평균 23개에 불과했던 창업 강좌 수는 올해 평균 82개로 약 4배 늘었다. 창업 강좌를 수강한 학생 수도 올해 평가 기준 학교당 3321명으로, 8년 전(1185명)보다 3배 많아졌다.

실질적인 학생 창업 성과와 노력을 평가하기 위해 2019년부터는 창업 기업의 매출액·고용인원, 학교의 지원금 등 지표를 추가했다. 4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2019년 평가에서 최근 3년간 창업 기업 수는 학교당 평균 36개였는데, 올해 평가에선 58개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학교당 평균 창업 기업 매출액은 4억5513만원에서 8억1510만원으로 늘었고, 창업 지원금도 49억6251만원에서 86억6411만원으로 늘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최경민 전국대학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협의회 회장(부산대 교수)은 “현재 세계적인 신생 기업 대부분은 대학에서부터 토대를 만들었다”며 “앞으로 학생들이 더 쉽게 창업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창업이 대학 교육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기술이전·실용연구 주목…“대학, 부가가치 높은 기술 만들어야”

기술이전 수정

기술이전 수정

20여년 전부터 대학평가는 대학이 기업 등에 기술을 이전하고 얻는 수입을 중요한 지표로 평가했다. 대학 울타리 안에서 끝나는 연구가 아니라, 실용화해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시작될 때였다. 이론 중심의 ‘상아탑 대학’도 변하기 시작했다. 2003년 학교당 평균 1866만원이었던 기술이전 수입은 올해 평가 대학 평균 23억3871만원으로 약 20년간 125배 증가했다. 2021년부터는 기술이전 건당 수입액 지표를 신설해 같은 수입을 얻더라도 작은 기술 여러 건보다 큰 기술 한 건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19년에는 기술 한 건당 평균 2385만원을 얻었지만, 지난해엔 3685만원으로 1.5배 증가했다.

장기술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 회장은 “최근 대학의 재정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술이전이 과거보다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며 “이제는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이전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학생 취업·진로 지원 중점 평가…현장실습 참여 학생 2배 늘어

취업난이 심해질수록,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의 '미스매치'를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대학평가는 미스매치를 줄이고 학생의 진로에 도움이 되는 ‘현장실습 참여 학생 비율’ 지표를 2011년 신설했다. 이전까지 대학가에는 ‘대학은 취업 알선소가 아니다’, ‘취업은 학생의 몫’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의 주요 대학들도 현장실습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대학평가는 ‘양질의 현장실습’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장기 현장실습에 가중치를 높였고, 임금을 제대로 받는 실습만을 인정했다. 무급·열정페이로 이뤄지는 질 낮은 실습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저임금의 75% 이상 임금을 받는 현장실습생은 최근 2년새 1.5배 늘었다.

논문 ‘질적 평가’ 강조…최고 수준 논문 OECD 중 11위

1990년대만 해도 주로 논문 수로 평가받던 교수 사회에 ‘질적 평가’를 강조한 것도 대학평가였다. 1995년부터 논문 수 뿐만 아니라 논문의 피인용 실적을 평가 지표에 반영했고, 최근에는 국제 학계의 평균 대비 질적 수준을 볼 수 있는 피인용 지수를 활용하고 있다. 연구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피인용 수가 높은 국제논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지난 1991~1995년 출판 기준으로는 서울대 논문보다 하버드대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36.2배 많았는데, 2017~2021년 출판 기준으로는 격차가 3.5배로 줄었다. 최근 5년간(2017~2021년) 국내에서 나온 논문 중 피인용이 세계 10%에 드는 논문 수는 OECD 38개국 중 11위다. 여전히 미국 등 학계 선진국 대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논문의 질적 수준 격차도 줄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연구평가 서비스인 ‘네이버 스칼리틱스’의 유봉석 서비스운영총괄은 “한국은 2차 전지와 신소재 등 공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연구 인프라와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 그리고 활발한 국제 협업 등의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 연구비도 30년 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교수 1인당 연구비는 1994년 평가 당시 640만원에서 올해 1억7300만원으로 27배 늘었다. 강병철 서울대 연구처장은 “앞으로 국제 협력연구를 더 확대하는 등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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