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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금지법 없으니 합법? 빼앗긴 문화재, 애국심만으로 되찾기 힘든 이유[BOOK]

중앙일보

입력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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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
김병연 지음
역사비평사

인천 강화전쟁박물관에 가면 신미양요(1871년) 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를 볼 수 있다. 가로·세로 4m가 넘는 대형 깃발로 장수를 뜻하는 ‘수(帥)’자가 적혀있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던 이 깃발은 2007년 국내로 돌아왔다. 신미양요 때 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간 지 136년 만의 귀환이었다.

2007년 136년 만에 돌아온 어재연 장군의 장수기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될 때의 모습. [중앙포토]

2007년 136년 만에 돌아온 어재연 장군의 장수기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될 때의 모습. [중앙포토]

우리에겐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엄밀히 말해 깃발의 법적 소유권은 미국에 있다. 강화전쟁박물관은 미국과 장기 계약을 맺고 깃발을 빌려와서 전시 중이다. 미국은 1814년 제정한 법률을 소유권의 근거로 내세운다. 전투 중에 노획한 적의 깃발은 전리품으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제국주의 시대 강자의 논리라는 점에서 우리에겐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문화재청에서 국외문화재 환수 업무를 담당했던 저자는 “19세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취득한 서구 열강의 약탈품 대부분은 수자기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약탈의 시대에 약탈을 금지하는 법이 없었으니 합법이라는 서구 사회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문화유산 개념이 20세기 중반에 형성됐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합리함”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빼앗긴 문화유산을 돌려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지중해 섬의 오래된 교회에서 도둑맞은 성화, 호주 태즈메이니아 섬의 원주민 유해, 할리우드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경매에서 낙찰받은 공룡 화석 등이 등장한다. 다행히 정당한 주인에게 되돌아간 문화유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 [AP=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 [AP=연합뉴스]

저자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한때 사라졌던 모나리자의 사연도 소개한다. 1911년 이 그림을 훔쳤던 이탈리아인은 “애국심의 발로”라고 주장하며 재판에서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루브르박물관에 모나리자를 돌려줬다.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이탈리아에서 반출됐다는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문화유산의 환수는 애국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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