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61. 미혼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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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몇 차례 방문 끝에 만삭의 소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들은 두 명이 방 하나를 사용했다.[김희중 갤러리]

"… 큰 죄를 지었어요. 후회돼요. 다시 세상을 산다면 이런 일은 겪고 싶지 않습니다."

1995년 경기도 안양의 미혼모 수용시설에서 만난 16세 소녀는 입술을 깨물며 이렇게 말했다. 배는 만삭이었지만 얼굴에는 아직 솜털이 남아 있었다.

그해 나는 중앙일보에 '에드워드 김의 영상취재'라는 기획물을 연재했다.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는 독자들이 사진과 글로 구성된 지면을 보며 사회의 주요 이슈를 알게 하는 게 기획의 목적이었다. 미주리대의 이덤 교수에게서 배우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다듬은 포토저널리즘을 신문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소재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걸 선택했다. 온 국민이 궁금해 하던 북한 경수로(輕水爐) 지원, 결식노인 문제, 대졸 취업난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들도 취재 대상이었다. 한때 산업 역군이었으나 진폐증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광부들, 제주 해녀의 애환이 그런 것들이었다.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해외 입양 문제였다. 태어나자마자 머나먼 이국으로 떠나는 아기들을 비행기에서 볼 때마다 '저 아이들을 우리가 책임져야지 왜 외국에 맡기느냐?'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취재해 보니 해외 입양의 뿌리에는 미혼모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수소문해 찾아간 미혼모 보호 시설에는 17명의 소녀들이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놀라웠던 건 미혼모 자신들이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임신을 했고, 중절의 기회를 놓쳤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출산한 뒤 큰 죄의식 없이 아이와 헤어져 다시 사회로 나갔다. 문제는 가정불화였다. 미혼모들은 대부분 화목하지 못한 가정을 등지고 나온 아이들이었다.

나와 마주 앉은 소녀는 좀 달랐다. 미혼모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를 설득해 사진을 찍어야 했다.

"부끄럽겠지만 사진을 찍으면 너와 같은 불행을 당하는 사람을 줄일 수 있단다. 세상 사람들은 너희의 고통을 잘 몰라."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신문에 나가겠어요."

만삭의 소녀를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설득하고 식사도 함께하며 마음의 빗장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세 번, 네 번 찾아가 얼굴을 익히자 드디어 소녀가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떤 사진이 좋을까? 논란이 있더라도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옷을 벗기고 부풀어 오른 배만 찍는 것이었다. 산모의 나이는 부른 배를 감싸 안은 여린 손으로 표현하면 되었다.

하지만 소녀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수치심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믿음을 주지 못한 탓이었다. 누드 사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햇살이 드는 창가에 그녀를 앉히고 고개를 약간 숙이게 한 다음 꽃을 한 송이 들게 했다. 만삭의 배는 헐렁한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촬영한 사진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때까지 미혼모를 촬영해 보여준 언론은 없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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