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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가 공권력에 도전하다니(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암흑가의 대부들이 연대,형량을 낮추려고 담당검사들을 협박하면서 이른바 「공권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명명백백한 범죄행위로 구금돼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범법자가 어떻게 국가공권력과 법 집행의 상징인 검사들을 협박할 수 있었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더구나 구치소내에서 회합을 갖고 외부전화와 서신까지 활용하면서 작전을 협의하고 바깥의 조직원을 지휘·동원할 수 있었다는 데 이르러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쩌다가 우리의 검찰과 교도행정이 이 지경에까지 왔는가.
우리는 이번에 알려진 폭력조직 두목들의 협박내용 자체의 진위 여부 판단은 유보한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 막바지에 몰린 조직폭력배들이 담당검사들의 수사의욕을 떨어뜨리고 공권력의 도덕성을 훼손하기 위한 악랄한 수법이라는 검찰의 해명을 오히려 믿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천과 대전·수원 등에서 국회의원과 판·검사가 조직범죄와 연계돼 일어났던 추태가 엊그제였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위협적인 범죄조직으로서의 조직폭력이 고위공직자를 포함한 공권력과 유착되거나 적어도 뒷거래가 있다는 의혹은 지울 수 없게 됐다.
몸가짐이 흐트러져 공권력이 도덕성을 의심받는 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1차적 임무수행에 국민적 성원을 받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폭력조직의 검찰에 대한 「선전포고」는 검찰의 말대로 공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일 수 있으며 검찰권 확립의 고비일 수도 있다.
조직폭력배들이 폭로하겠다고 벼른다는 사안들을 검찰 스스로가 폭력배 수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는 정도로 흐지부지 한다면 그 고비는 검찰권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하고자 한다. 범죄에 추상같은 검찰상은 어떤 경우에도 떳떳한 자기 정당성에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이 검찰의 허심탄회한 자아비판과 자정노력의 계기가 되기를 당부한다.
우리는 검찰이 이에 앞서 폭력배들의 협박내용을 극명하게 규명하기 위한 철저한 조사를 벌이고 한 점의 의혹이라도 있을 경우 내부 정화에도 과감해야 하며,이를 통해 폭력조직 수사에 가시적 성과를 올리는 의연함을 보여 줄 때만 결백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우선 폭력배들이 거론했다는 수배중 폭력배와의 술자리 합석사건,수사중 피의자 가혹행위,술집 여종업원과의 스캔들 등 검찰내부와 관련된 사안을 투명하게 밝혀내야 한다.
이와 함께 공공연한 소문으로 되어온 구치소내에서의 교도관과 폭력배간의 금전을 통한 결탁의혹과 정치인 및 권력기관 고위공직자와의 유착관계설도 실체적 진실을 찾아 내는 노력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면서,범인이 무슨 소리를 해도 믿지 말아 달라고 했다가는 검찰은 설 자리가 극히 좁아진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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