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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명의가 되물었다 "중국집 어떻게 주문합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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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광우 가천대 길병원 교수

닥터 후(Dr. Who)

파킨슨병은 치매 다음으로 많은 퇴행성 질환입니다. 노인 인구의 1~2%가 앓고 있으며, 5년 전보다 14%나 늘었습니다. 파킨슨병은 원인도 잘 모르고 진단도 딱 떨어지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환자가 겪는 증상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냥 중국집 가서 “아무거나 주세요” 하지 않는 것처럼 파킨슨병은 의사가 ‘오마카세’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박광우 가천대 길병원 교수

박광우 가천대 길병원 교수

“교수님이 알아서 잘 치료해 주세요.”

박광우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이런 말 하는 환자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가 보는 환자 중 70%는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미세한 떨림으로 시작해 거동이 불편해지는 파킨슨병은 완치가 불가능하다. 약물치료나 수술을 통해 진행을 늦추거나 증상을 조절한다. 처음에 그를 찾은 환자는 어떤 방식으로 치료할지, 약을 얼마나 복용할지 결정할 때 전적으로 의사한테 의지하려고 한다. 그런 환자들에게 박 교수는 “고기 드실 때 소인지, 돼지인지는 알고 먹어야죠. 중국집에 가면 ‘아무거나 주세요’하고 주문하진 않으시잖아요?”라고 반문한다. “파킨슨병 치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환자의 의무며 그래야 치료 성적도 좋다”는 게 박 교수의 진료 철학이다.

파킨슨병은 치매 다음으로 많은 퇴행성 질환으로, 고령화로 꾸준히 발병이 늘고 있다. 지난해 파킨슨병 환자 수는 12만547명으로 5년 전인 2018년(10만5882명)보다 14% 증가했다. 노인 인구의 1~2%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뇌 흑질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서서히 소실되는 파킨슨병은 행동 장애가 대표적 증상이다. 떨림, 서동증(운동이 느려짐), 근육 강직 등이 나타난다. ‘허니문 기간’이라고 해서 초기 3~5년은 약물을 쓰면 잘 듣는다. 이후에는 내성이 생겨 효과가 뚝 떨어진다. 약물 용량을 늘리지만 병의 진행은 막을 수 없다. 환자마다 병의 진행 속도가 다르다. 이런 병의 특성 때문에 박 교수는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 개입을 강조한다. 수술 방법부터 약물 사용 용량까지도 적극적으로 의사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 [사진 질병관리청]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 [사진 질병관리청]

박 교수의 이력은 독특하다. 남들은 1개 겨우 취득하는 전문의 자격을 2개 가진 복수 전문의다. 신경외과 전문의이면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다. 파킨슨병 환자의 약물치료는 주로 내과(신경과)가 맡는다. 외과에서는 수술(뇌심부자극술)로 파킨슨병 증상을 치료한다. 박 교수는 외과 의사지만 약물치료와 수술 둘 다 한다. 그의 환자 중에는 5년째 약물치료만 진행하는 환자도 꽤 된다. 병원 내에서 사람들이 박 교수를 ‘준내과의사’라고 부를 정도다. 박 교수는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물론 환자에게 강력히 권한다. 하지만 환자가 주저하거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뜻을 존중한다”며 “수술은 하나의 치료적 옵션과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진료실에서 환자와 세 가지 주제에 대해 꼭 이야기를 나눈다. ‘이게 무슨 병이고’ ‘어떻게 치료할 것이며’ ‘어떻게 될 것인가’다. 의사는 환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치료 옵션을 설명하고, 환자는 자기 상태를 이해하고 의사와 상의해 치료법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이걸 ‘개인치료결정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약을 처방할 때에도 상세하게 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설명한다. 환자가 판단해 복용약을 조절하는 방식까지 제안한다.

닥터 후 QR

닥터 후 QR

박 교수는 파킨슨병 환자에게 실시하는 뇌심부자극술에 대해 지나치게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수술은 뇌의 깊은 곳(심부)에 전기선을 넣어 미세 전기자극을 통해 운동 증상을 개선하는 것이다. 위험한 수술은 아니지만 머리에 동전 크기의 구멍을 뚫는다는 데 대한 환자들의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박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이런 치료 옵션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생각해보라”며 “수술 하면 약물을 줄일 수 있게 돼 치료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내년 상반기에 파킨슨·전이암·뇌종양 등 치료 말기에 있는 환자들의 사연을 담아 ‘잘 죽는 법’에 관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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