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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위험한 만남' 강행한다…김정은·푸틴 단독회담도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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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러시아와 북한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두 번째 북·러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11일(현지시간) 동시에 공식 발표했다. 북·러 간 무기 거래 움직임 등을 이유로 미국 등 서방 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정상회담 개최를 강행한 것이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수일 내(in coming days) 러시아에 찾아올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동안 대표단은 대화를 하고, 필요한 경우 양국 정상이 일대일 회담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러시아를 곧 방문해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그러나 김 위원장의 평양 출발 시간과 도착 예정 시간, 회담 일자 등 구체적인 방러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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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전용 열차인 ‘태양호’를 타고 러시아로 이동 중인 것으로 이날 파악됐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이날 “11일 현재 김정은이 평양을 떠나 열차편으로 이동 중”이라고 말했다. 정보 당국은 지난 10일 늦은 오후 김 위원장을 태운 열차가 북·러 국경 지역을 향해 비교적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의 특별열차가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고 열차가 출발한 뒤 정차 없이 목적지인 극동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도 이날 러시아 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탄 열차가 러시아를 향해 평양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발표에서 “곧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다”고 표현한 점으로 볼 때 김 위원장은 보도 시점(서울 시간으로 오후 8시15분쯤)에 북·러 국경을 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김정은 쉬쉬하며 방러…푸틴과 회담 위험성 의식했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에 이어 4년여 만인 11일 러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조선중앙TV가 2019년 4월 24일 공개한 김 위원장의 모습. 새벽 방러행 열차에 올라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당시 함흥에서 러시아 하산까지 10시간 넘게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에 이어 4년여 만인 11일 러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조선중앙TV가 2019년 4월 24일 공개한 김 위원장의 모습. 새벽 방러행 열차에 올라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당시 함흥에서 러시아 하산까지 10시간 넘게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2차 북·러 정상회담 개최지는 2019년 4월 첫 정상회담을 한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보인다. 실제 이날 블라디보스토크역은 전날과는 달리 다수의 경찰 인력이 배치되는 등 경비가 대폭 강화된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목적지가 블라디보스토크가 맞는다면 이는 북한 내 열악한 철도 사정을 고려할 때 약 20시간에 걸친 1179㎞의 여정이다. 2019년 당시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는 4월 24일 새벽 평양을 떠나 북·러 국경 인근 러시아 하산역을 거쳐 당일 오후 6시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정상회담 개최 시점과 관련해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이 12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이날 저녁에 회담할 가능성이 높으며, 포럼의 마지막 날인 13일까지 러시아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11~12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할 예정이다.

북·러는 이날 김 위원장의 방러와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동시에 공식 발표했다.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공식 발표 수 시간 전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의 방러에 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러시아 매체 RTVI) 이는 2019년 4월 1차 정상회담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그만큼 이번 회담 개최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첫 정상회담 당시 러시아 외무부는 회담 1주일 전에 발표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는 이번 정상회담이 4년 전과는 달리 국제사회의 경고와 압박 속에서 추진됐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2019년 김 위원장은 그해 2월 북·미 간 ‘하노이 노딜’ 직후 러시아 방문을 택했는데, 이는 국면 타개 목적으로 우호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통상적인 외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는 국제사회가 규탄하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 및 핵·미사일 관련 기술 이전, 북한 노동자 파견 등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수차례의 대북 제재 결의를 통해 금지한 불법행위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미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탄약 등 무기를 공급하는 대가로 정찰위성, 핵추진잠수함 등의 기술을 요청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방러 및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사전 공개하면서 계속 경고음을 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에도 CBS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무기 지원을 위한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그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은 결국 이들 국가를 한층 고립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어 “러시아는 매우 절박하며 그들은 이미 전략적 실패를 경험했다”며 “그런 측면에서 이는 분명히 러시아의 자포자기 행위의 일환이지만 동시에 북한 입장에서도 이에 응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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