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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로봇, 열 자녀 안 부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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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녀가 떠나고, 몸은 제대로 가누기 힘들고…. 잘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나 고령화 시대의 노인들이 두려운 건 외로움과 더불어 수발을 들어줄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 뒤엔 첨단기술의 도움으로 그런 시름을 꽤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선 노인들이 의지하는 '실버 로봇' 개발 붐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이미 독일 프라운호퍼 생산기술연구소(IPA) 의 '케어봇', 헬름홀츠 로봇연구소의 로봇 팔, 이탈리아 성(聖)안나고등과학원(SSSA)의 뇌졸중 환자 재활 로봇 등 다양한 실버 로봇이 개발 중이다.

유럽연합(EU)은 6차 '유로 프레임워크' 기술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난 5년 동안 실버 테크 같은 로봇 기술에 1억4000만 유로(약 1조8000억원)를 투자했다.

17일 독일 남서부의 대도시 슈투트가르트 시내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슈투트가르트 대학 캠퍼스에 인접한 프라운호퍼 생산기술연구소. 이곳 로봇 실험실에는 팔 하나와 바퀴가 달린 150㎝쯤 키의 사각형에 가까운 케어봇(사진 #1)이 서 있었다. 언뜻 보기엔 사람 모습도 아니고, 바퀴로 움직이며, 손가락도 투박한 기계 집게 모양이어서 그저 그런 로봇 같았다. 그러나 크리스토프 새퍼 로봇시스템그룹 부장이 영어로 "케어봇,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 좀 꺼내 줘"라고 말하자 신기하게도 바퀴를 굴리며 냉장고로 가 문을 열고 오렌지 주스를 꺼내 왔다. 발음이 불편한 노인은 교과서 크기의 화면이 달린 무선단말기로 케어봇에 명령할 수 있다. 케어봇 몸통의 터치스크린으로 조종할 수도 있다.

케어봇은 이런 하찮은 실내 심부름뿐 아니라 사람이 걸을 때 두 손잡이를 잡고 원하는 곳으로 운전할 수도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손잡이에 의존해 걸을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사용자의 키에 맞춰 로봇의 손잡이를 조정할 수 있고, 침대나 의자에서 일어날 때 도와주기도 한다. 응급상황 때 병원이나 응급구조대에 대신 연락을 해주고, TV.전화기로도 쓸 수 있다. 로봇의 팔은 평상시엔 접혀 있으며, 손가락은 두 개다. 새퍼 부장은 "노인들에게 시범 사용케 해 봤더니 아주 편하다는 평을 들었다"며 " 팔이 하나밖에 없지만 앞으로 두 팔을 달고, 손도 가볍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독일 뮌헨에서 남서쪽으로 20㎞쯤 떨어진 헬름홀츠 로봇연구소에는 아마도 세상에서 인간의 손과 팔을 가장 닮은 로봇이 있다.

로봇 팔(사진 #2)은 컴퓨터가 내장된 박스 위에 덩그러니 설치돼 있다. 팔에 달린 손에는 네 손가락이 달려 있으며, 손가락 마디는 사람과 같은 3개씩으로 실제 손 구조와 거의 같다. 연구원이 5m 앞에서 테니스공을 던지자 로봇팔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잡아냈다. 공의 속도는 5m를 0.8~1초에 날아가는 정도여서 야구 투수의 볼처럼 빠르진 않지만 이런 정도의 성능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 인조 손은 또 페트병의 뚜껑을 돌려 딴 뒤 잔에 물을 부어주기도 한다.

이 연구소의 카르스텐 프로세 연구원은 "사람의 정교한 팔과 손만큼 다양한 일을 잘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굳이 온전한 사람처럼 보이게 두 다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팔을 설치한 박스 밑에 바퀴를 달면 된다는 것이다.

1층 실험실에는 인간의 상체와 비슷하게 생긴 몸체에 이런 팔 두 개를 단 로봇이 설치돼 연구원들이 성능 시험을 하고 있었다. 상체는 인간처럼 굽힐 수 있다. 두 팔을 직접 잡아 옆으로 밀자 육중할 것만 같은 로봇 상체와 팔은 수수깡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밀듯 너무나 가볍게 움직였다. 고성능 모터와 가볍고 견고한 신소재를 쓴 덕이다. 게르트 히르칭어 뮌헨 대학 교수 겸 로봇연구소장은 "사람처럼 두 손으로 물건을 집어 들 수도 있고, 다양한 심부름을 할 수 있다"며 "서비스 로봇뿐 아니라 산업용 로봇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격인 성안나고등과학원 소속 CRIM.ARTS 두 연구실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실버테크 개발의 산실이다. 파올로 다리오 교수가 총책임을 맡고 190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손발이 불편한 사람에게 밥을 떠먹이는 로봇 연구용 시제품(사진 #3)이 개발됐다.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 식탁 앞에 앉으면 로봇이 먼저 사람의 입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 뒤 숟가락 또는 포크로 음식을 입에 넣어준다.

이 밖에 뇌혈전 환자의 손 동작을 교정해주는 재활 로봇, 다리 관절 보조용 로봇(사진 #4) 등을 개발했다.

우리나라는 일부 도우미 로봇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이들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실버 로봇 시장은=세계적으로 로봇은 산업용 로봇이 주류였으나 근래 청소.경비 등 개인서비스용 로봇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고도의 기능을 가진 가사 도우미 로봇 등은 이제 연구실 개발 단계고 시판되려면 시일이 좀 걸린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개발한 가사 도우미 로봇은 2010년 이후에나 초기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국제로봇연맹은 개인 도우미 로봇이 2016년 전체 로봇 시장의 40%(약 2000억 달러) 정도로 클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점유율은 청소용 등을 포함해 10% 정도다.

인공심장 … 내시경 검사 … 로봇이 대신한다

헬름홀츠 로봇연구소는 2004년 인공심장 보조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몸 안에 이식할 수 있어 심장이 약해 피를 동맥으로 세게 뿜어주지 못하는 심장병 환자는 물론 심장마비 긴급 환자를 구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로봇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전기는 6W 정도로 아주 작다. 전기는 몸 밖에서 무선으로 전송한다. 이 때문에 전지가 다 닳아 사망할 염려는 없다. 하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고장이 날 확률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당장은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한시적으로 이식하는 수준에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성안나고등과학원의 경우 메뚜기 다리처럼 생긴 가느다란 다리를 몸체에 단 내시경 로봇을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의 내시경은 사람이 억지로 밀어 넣거나 캡슐처럼 삼킨 뒤 장의 연동운동에 의해 항문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내시경은 발을 오므린 상태에서 환자가 삼키면 식도나 위에서 발을 편다. 그런 뒤 원하는 부위로 걸어가 영상을 찍어 외부 모니터로 보낸다. 현재는 제품 개념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용 시험만 하고 있다. 개발이 성공하기까지는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또 수술 로봇용 소형 카테터를 개발하고 있다. 2㎜ 직경의 가는 내시경 끝에 수술칼을 단 것이다. 카테터는 내시경처럼 가는 관 끝에 혹 절단용 올가미나 소형 수술칼 등을 달아 외부에서 의사가 조종하는 것이다. 소형 카테터는 작은 장기 수술을 할 수 있고, 상처가 작아 수술 후유증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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