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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역 ‘묻지마 테러’ 14명 부상…도심 복판 남녀노소 안 가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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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일 오후 6시쯤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흉기 난동사건 피의자 최모씨가 쇼핑몰에서 흉기를 들고 달려들자 시민들이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사진 독자]

3일 오후 6시쯤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흉기 난동사건 피의자 최모씨가 쇼핑몰에서 흉기를 들고 달려들자 시민들이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사진 독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 있는 쇼핑몰에서 20대 남성이 차량을 몰고 행인들을 덮친 뒤 흉기를 휘둘러 14명이 다쳤다. 경찰은 이 남성을 현장에서 긴급 체포했다.

경기남부경찰청과 분당경찰서 등에 따르면 3일 오후 5시59분쯤 서현역에서 차량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를 들이받은 뒤 흉기로 사람들을 찔렀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비슷한 시각 119에도 “남자가 사람을 찌르고 다닌다”는 내용의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오후 6시5분 사건 현장에서 피의자인 최모(22)씨를 검거했다.

사건 직후 119 구급대원과 시민들이 최모씨가 휘두른 칼에 찔린 부상자를 구호하는 모습. [사진 독자]

사건 직후 119 구급대원과 시민들이 최모씨가 휘두른 칼에 찔린 부상자를 구호하는 모습. [사진 독자]

 배달업 종사자인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횡설수설하며 “불상의 집단이 나를 청부살인하려 해서 범행을 벌였다”는 등 피해망상 증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마약 투약 간이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조현병 등 정신병력을 파악하고, 마약 투약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모발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다. 범행 동기와 경위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최씨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흉기를 휘둘렀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현재 부상자는 총 14명으로 파악됐다. 차량에 치여 다친 피해자가 5명, 흉기로 인한 피해자는 9명이다. 부상자 중 12명은 중상을 입었다. 차량에 부딪친 60대 여성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위독한 상태다. 또 20대 여성 한 명도 긴급 수술을 받았다. 부상자들은 인근 아주대병원 등 6개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건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코앞에서 흉기 난동을 목격한 이들은 필사적으로 출입문을 향해 달렸다.

부상여성 지혈한 18세 “나도 찔릴까 두려웠다”

3일 오후 6시쯤 서현역에서 무차별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부상자를 낸 최모씨가 타고 온 경차 앞 유리가 부서져 있다. 최씨는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 다수를 충격한 후 쇼핑몰로 진입했다. [뉴시스]

3일 오후 6시쯤 서현역에서 무차별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부상자를 낸 최모씨가 타고 온 경차 앞 유리가 부서져 있다. 최씨는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 다수를 충격한 후 쇼핑몰로 진입했다. [뉴시스]

유혈이 낭자하고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이면서 평화롭던 퇴근길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사건 발생 당시 서현역 6번 출구 인근에 있었던 이모(20)씨는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지하철을 타러 가려는데 서현역 시계탑 사이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며 “돌아보니 한 20m 앞에서 어떤 남자가 칼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라. 너무 무서워 ‘나가세요’라고 소리치면서 도망나왔다”고 다급했던 상황을 전했다. 쇼핑몰 내 한 가게에서 일하는 박모(27)씨는 “저녁식사를 가지러 갔다가 돌아오는데 서현역 광장 쪽에서 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며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가게 쪽 문밖으로 뛰어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인 쇼핑몰 직원 40대 이모씨는 “범인은 못 봤고, 3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걸 봤다. 사람들이 맨손이나 휴지 뭉치를 가지고 지혈을 했다. 부상자 중에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여성도 있어서 남성 둘이 양쪽에서 지혈했다. (다친 사람들은) 얼굴이 창백하고 핏기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건 직후 급파된 과학수사대가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사건 직후 급파된 과학수사대가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흉기에 찔린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응급처치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친구 2명과 사건 현장을 지나던 윤도일(18)군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걸 보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 시계탑 쪽으로 향했다가 피를 흘리는 남성 1명과 여성 1명을 발견했다. 이후 윤군은 피해 여성의 상처 부위를 막아 지혈을 시도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피해 여성의 일행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고 한다. 윤군은 “일단 뭐가 없어서 손으로 피가 나오는 곳을 막고 가방으로 기도를 확보했다. 그러다 어떤 분이 갖다 준 수건을 건네받아 15분 정도 더 누르고 있다 보니 구급대가 도착했다”며 “지혈하는 동안 범인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고, 경찰이 쫓아갔는데, 그 순간 언제 나도 찔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뿐 아니라 30대로 보이는 남성 한 분도 그 근처에서 피를 흘리며 소리치다 의식을 잃었다”며 “다 살아계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구조대원들이 서현역 사건 현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흉기 난동으로 시민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뉴시스]

구조대원들이 서현역 사건 현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흉기 난동으로 시민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뉴시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두 시간 후인 오후 8시 경찰청에서 전국 시·도 경찰청장 화상회의를 열고 신림동 사건을 언급하며 “이른바 ‘묻지 마 범죄’, 이상 동기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이 극도로 높은 상황에서 유사성 있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이전 범죄와 궤를 달리하는 사실상 ‘테러행위’와도 같다”며 “즉각적이고 집중적인 경찰력 투입으로 이상 동기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을 불식시키고, 다중밀집 장소를 중심으로 가시적인 활동을 강화해 달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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