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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파열, 받아주세요"…수도권 응급환자마저 헤매고 있다 [심장질환 진료 붕괴]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16일 저녁 제주에서 80세 급성대동맥박리증 환자가 소방헬기로 이대대동맥혈관병원에 이송됐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당시 제주에는 이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가 없었다. 이대서울병원 제공

지난 6월 16일 저녁 제주에서 80세 급성대동맥박리증 환자가 소방헬기로 이대대동맥혈관병원에 이송됐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당시 제주에는 이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가 없었다. 이대서울병원 제공

“80세 남성 복부대동맥파열 환자, 지금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달 25일 오후 6시30분께 송석원 이대서울병원 대동맥혈관병원장 휴대전화에 다급한 메시지가 들어왔다. 경기 북부 A대학병원 응급실 의사의 문의였다. 환자는 갑작스런 혈변으로 응급실을 찾았는데, 검사해보니 복부대동맥 혈관벽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터져 있었다. 복부대동맥은 심장에서 뿜어나온 혈액이 장기로 가는 통로다. 이게 터지면 과다출혈로 숨지거나 장기 등이 망가진다. 분초가 급한 상황이지만 A병원에는 당시 수술 가능한 흉부외과 의사가 없었다. 병원 측은 “흉부외과 교수가 2명이고, 이 중 심혈관 질환을 보는 의사는 1명이다. 혼자 365일 24시간 당직을 설 수 없으니 응급 수술을 못 할 때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근처에도 수술 가능한 데가 없다. 심장질환 진료 시스템이 무너져 내린 결과다.

환자 이송까지 50분. 환자의 상태, 검사기록 등이 송 원장 수술팀과 행정인력 등 90여명의 단톡방에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365일 언제든지 응급 심혈관 환자를 수술할 수 있게 송 원장이 꾸린 팀이다. ‘이송 가능한 전국의 모든 환자를 받는다.’ 송 원장 팀의 원칙이다. 도착과 동시에 수술실로 직행할 수 있게 90여명이 지침에 따라 착착 움직였다.

송석원 원장이 24시간 가지고 다니는 '대동맥폰'. 다른 병원의 전원 문의가 들어오면 도착 전 환자 정보를 보고받고 의료진과 관련 팀에 공유한다. 병원 도착 즉시 환자 치료가 시작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에스더 기자

송석원 원장이 24시간 가지고 다니는 '대동맥폰'. 다른 병원의 전원 문의가 들어오면 도착 전 환자 정보를 보고받고 의료진과 관련 팀에 공유한다. 병원 도착 즉시 환자 치료가 시작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에스더 기자

“CPR(심폐소생술) 필요할 수 있겠는데.”
앰뷸런스 도착 지점에서 대기하던 이해ㆍ김명수 이대서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급차가 막혀 환자 도착이 지체됐다. 오후 7시35분에 도착했다. “OOO씨, 들리세요” 의료진이 환자를 부르며 상태를 확인했다. 동시에 구급차의 카트가 대동맥센터 수술실로 향했다. 환자는 의식이 희미했다. 의료진이 마취 후 가슴을 열었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의료진은 신속하게 터진 혈관을 인조혈관으로 교체했다. 한 생명을 구하는 순간이었다. 송 원장은 “A병원 응급실 의사가 얼마나 속이 탔겠나. 이송 과정의 사망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으니 여기까지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이튿날인 지난달 26일 오후 7시 50분께 제주에서 71세 급성대동맥박리증(대동맥 혈관 내막이 찢어지는 질환) 환자가 발생했다. 제주의 한 종합병원이 수술할 수 없어 이대서울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그런데 40분 후 기상 악화로 헬기가 못 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의료진은 날씨가 호전되길 기다렸다. 시간이 한없이 흘렀고, 다음날 새벽 1시45분 환자가 숨졌다. 지난 6월에는 제주 환자를 소방헬기로 이송해 살렸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송 원장은 “서울ㆍ수도권에도 야간ㆍ휴일에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많지 않다. 앰뷸런스를 타고 돌다가 사망하는 환자가 많다. 가슴 아픈 우리 의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진단ㆍ치료가 까다로운 소아 심장 분야는 전문 의료 인력 부족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김웅한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소아 심장 분야 의사가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라고 한탄했다. 현재 소아 심장수술전문의가 15명에 불과하다. 환아 부모들이 교수 이름을 다 외울 정도라고 한다. 김 교수는 “흉부외과 파트 가운데 소아 심장은 전공의가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대가 끊길 것”이라며 “머지않아 한국에서 외국으로 나가 소아 심장 수술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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