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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악수의 전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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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악수는 신뢰를 담은 행위다. 두 사람이 서로 한 손을 맞잡는 행위인데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인사법이다. 엄지를 위로 세우고 손을 비스듬히 내민 다음 상대방 손을 잡고 2~3회 위아래로 살짝 흔들어주면 된다.

악수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 벽화에는 사람들이 악수하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쟁이 빈번했던 중세 시대 악수는 “너와 싸울 의도가 없다”고 알려주는 행위였다. 칼 같은 무기를 쥐는 오른쪽 손을 내밀고 무기가 없음을 증명했다. 여기에 맞잡은 손을 흔드는 행위가 더해졌는데, 소매 속에 단도·권총 같은 무기를 숨기지 않았다는 표시라고 한다. 19세기 들어 상인들이 악수를 인사법으로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다.

동물도 악수와 비슷한 뜻을 담은 표현법이 있다. 고릴라는 가만히 서서 머리를 앞뒤로 흔들고, 침팬지는 서로 손을 두드린다. 야생 거미원숭이는 상대방을 껴안아 적대감이 없음을 알린다.

대개 악수를 할 때 상대방 눈을 보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기본예절로 본다. 리더십 연구자인 미국 로버트 E 브라운은 악수에 성격이 드러난다고 봤다. 적당히 힘을 줘 상대방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짓는 사람은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는 성격이란다. 악수하지 않는 다른 손을 상대방 손·어깨에 얹는 사람은 빨리 친해지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봤다. 악수하면서 상대방 손을 꽉 쥐거나 내 몸쪽으로 당기는 사람은 지배욕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재임 기간 세계 각국 정상을 만날 때 수십 초간 손을 놓지 않거나(일본), 세게 쥐고 당기거나(프랑스), 아예 악수를 외면하는(독일) 등 악수 기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2023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가 악수 때문에 시끄럽다. 경기가 끝나고 악수하려는 러시아 출신 선수에게 손 대신 검을 내민 채 거리를 둔 우크라이나 선수가 승리하고도 실격 처리당했다. 국제펜싱연맹(FIE)의 ‘경기 후 악수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겨서였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FIE는 해당 선수의 2024년 파리 올림픽 출전을 보장하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펜싱은 ‘매너 운동’으로 불린다. 하지만, 매너를 따지기 전에 조국을 침공해 당장 내 가족·이웃을 위협하는 상대국 선수에게 신뢰를 보이라는 요구가 맞는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