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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85) 이고 진 저 늙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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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이고 진 저 늙은이
정철(1536∼1594)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어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경민편(警民編) 경술을축본

스승은 부모와 같다

한글을 상말, 즉 언문(諺文)이라고 낮춰 부르던 시절, 누이들이 쓰는 문자를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워서 시조와 가사를 지어 국문학사에 찬연한 별이 된 송강(松江) 정철(鄭澈). 그가 강원도 관찰사로 제수됐을 때 지어서 백성들이 부르게 한 ‘훈민가(訓民歌)’ 열여섯 수의 맨 끝수다.

늙고 병들어보면 안다. 젊고 건강하던 시절엔 일상이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든 일로 변하는지를, 늙음 자체가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를. 그래서 시인 목민관은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진 늙은이에게 그 짐을 풀어 내게 달라고 한다. 돌도 무겁지 않았던 그 젊음이 그립다.

경로에 관한 한 우리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예순다섯 살이 넘으면 전철을 무료 승차하는 등 경로우대 혜택이 많다.

그런데 이런 미풍양속의 나라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교권을 침해하고 젊은 여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마저 일어났으니 망연할 따름이다. 송강이 이런 일을 보았다면 ‘훈민가’에 한 수를 더 보태었으리라. 부모는 생명을 주셨지만, 지식을 주시는 스승은 부모와 같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